존재의 근원 고요함(Still)과 움직임(Movement) - 2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F=ma, 서양은 만물의 본질을 운동으로 보았다. 물체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을 이루는 원자는 진동하고 있다. 음과 양은 분리되거나 대립적인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하나이다. 기, 태극, 주역 같은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양자역학의 상보성 원리는 인류 사상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은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로 압축할 수 있다. 움직임, 운동의 본질은 변화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상가들은 만물의 본질과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의 해답을 어떻게 찾았을까?
한국은 고려 말 주자학의 영향으로 이기론이 등장한 이후 서경덕1489-1546이 조선 최초로 ‘기(氣)’를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우주 만물의 시작과 구성 근원이 오로지 ‘기’ 하나뿐이라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한 그는 저작 《태허설太虛說》을 통해 기를 설명했다.
우주에는 기氣가 꽉 들어차 있다. 허공은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 태허太虛이다. 바람은 부채 속에 있지 않은데, 그렇다고 바람을 무無라 하기에는 뺨에 와 부딪치는 서늘함이 너무나 생생하다.
이 체험을 통해 서경덕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실재하는 기의 존재를 확신했다.[1]
비어 있지만 기로 가득 차 있는 ‘태허(The Great Void)’. 마치 우주가 탄생하기 직전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로 존재했던 특이점 그리고,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양자역학의 요동하는 진공과 닮았다. 이후 이언적(1491-1553)의 태극설을 거쳐 퇴계 이황(1501-1570), 율곡 이이(1536-1584) 등에 의해 보편적 사회사상으로 자리 잡았다.[2]
퇴계는《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앞서 얘기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이렇게 정리한다.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순함과 강함이라 하고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구 열강의 침입과 민족항일기를 지나 광복을 맞은 지 75년이 지나도록 기의 사유는 끊겨 있었다. 전통은 불행한 과거의 유산이어서 청산해야 할 짐으로 생각했기에, 기는 사유의 도구로 쓰이지 못하고 대신 서양 학문이 오랫동안 이 땅에서 자리 잡아왔다.
최근에 와서야 (전 지구적 심각성을 깨달은 서양이 동양의 사상을 받아들이듯) ‘실체와 현상’,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에 물들어 있는 서구적 방법론의 한계를 절감하고, 만물과 인간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이해하고자 동양 사상의 대표적인 기(氣)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ㆍ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3]
사례로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보기 위해 의대에서 양한방 통합과정이 생기거나 양성평등 운동 등이 이런 일환이다. 사상가로 도올(檮杌) 김용옥 선생이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기(氣)철학 또는 ‘몸(Body)철학’이라 부르는데, 자신의 여러 서적에 기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는 기철학의 두 가지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진리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몸)에 구현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진리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서양철학을 지배했던 이원론으로 현재까지 문제가 되는 몸과 마음, 실체와 현상의 문제 또한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너무 세분화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의학이 지닌 맹점의 경우 기철학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양의 기철학과 의술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질환을, 질환 자체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잘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의학은 증상은 해결하지만,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에 부딪힌다. 과거에는 거의 없던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간질환, 아토피 등이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그 예이다(그러자 후성유전학과 생활습관의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양극화와 혐오 프레임은 하나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대립적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이는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영원히 누리려 분열을 꾀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쟁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삶과 복지 그리고 환경 문제 등은 등한시하고 있다(우리는 기후 변화가 가져올 대재앙 앞에 서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라).
‘모든 사물에는 기가 있다(萬物有氣)’고 하고, 세계는 보이지 않은 (자연의 기본 힘이 얽혀 상호작용하는 양자장의 다른 표현인) 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그렇다면 기(氣),란 정확히 무엇인가? 과학적 관점으로 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기는 존재의 근원인 ‘운동과 정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해답과 운동하는 우주> 편에서 별의 생성 원리는 흩어져 있던 가스 구름이 중력으로 인해 한데 모여 압축되는 과정이라고 했다.(사전적 의미로 기운을 뜻하는) ‘氣(기)’의 일반적 상태인 기체(氣體, Gas)가 모인 성운 속에서 별이 생성되고, 기운이 다한 별이 폭발해 원소로 다시 흩어져 생명 탄생의 씨앗이 되는 것을 보면, 우주를 끊임없이 모였다 흩어지는 기의 흐름으로 이해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기를 '氣'라 쓰지만, 중국은 그 이전의 본자체인 ‘气(qì)’를 사용한다. 뭉게구름은 ‘云운’으로 나타내고, 새털구름처럼 하늘에 펼쳐진 구름 띠를 세 줄로 ‘三삼’자처럼 쓰다가 곡선으로 변형되어 만들어진 글자다. 구름이 바람에 흘러가듯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나타냈다.
나아가 심리적ㆍ생리적으로 ‘기운(氣雲, 활력, 생체 에너지, Energy, Vitality)’을 나타내는 말로 점차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파악된다. 의학에서는 사람이 살아있는지 여부를 기운으로 대변되는 ‘생명 징후(Vital Sign)’를 확인한다.
한국에서 쓰는 한자 '氣'는 원래 손님을 접대하는 곡식의 의미였다고 한다. 갓 지은 밥에서 기체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떠올려보라. 밥을 먹고 나면 기운이 나는 것은 밥을 통해 얻은 에너지, 즉 기가 온 몸에 전달되기 때문이다[4](그래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기’는 처음부터 동적인 ‘흐름气’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녔으며, 거기에는 사람의 호흡, 생명력 또는 활동의 근원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5]
그렇다면 음양오행(Yin-Yang and Five-Elements)이란 무엇인가? 음양은 낮과 밤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자연의 변화를 형상화한 글자로, 한 공간에서 빛과 그늘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된다. 해와 달이 뜨면 빛이 비치는 곳과 그늘진 곳이 동시에 생기므로, 양달이 먼저거나 응달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동시’라는 말은 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양이 있고, 반대로 양이 있는 곳에는 음이 있어서, 음과 양은 대립하지 않고 처음부터 함께 한다는 뜻이다.[6] 이는 양자역학의 상보성 원리와 같은 의미다.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를 지칭하며, 서로 도와주고 견제하는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가 모자라면, 전체 순환은 원활하지 않게 된다.[7]
음양이 사물을 서로 비교하여 그 특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라면, 오행은 변화의 근본 요소로 시간에 따른 사물의 변화 원리와 작용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사물의 역동성을 설명한다.
따라서 음양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개개 사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오행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작용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그러므로 음양과 오행을 ‘음양오행’으로 묶게 되면, 현상과 원리를 동시에 타내게 된다.[8] 한마디로 음양오행의 본질적 속성은 변화를 의미한다. 운동의 본질이 변화인 것처럼 말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생성과 더불어 운동하고 그 운동이 멈추면 소멸한다. 만고불변의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이미 주어지거나 결정된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며, 이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맥을 같이 한다.
이처럼 음양오행을 포괄하는 기氣는 별이 생성ㆍ소멸하듯 어떤 사물을 시간과 공간속에 드러나게도 흩어지게도 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즉 만물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리에 대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 아직 (호킹이 그토록 알아내고자 했던) ‘모든 것의 이론’으로 도출하지 못해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만물을 운행하는 단 하나의 원리인 것이다.[9] 또한 그 자체가 나와 당신이다.
우주는 움직이는 무無에서 우연히 그리고 스스로 급팽창과 대폭발이라는 운동을 통해 탄생했고, 그로 인해 별이 생성됐으며, 그 별이 폭발해 흩뿌려진 원소들로 행성과 생명이 탄생했다. 생명은 끊임없는 변화와 움직임을 상징하며 인간의 몸이 바로 그 ‘기(氣)’의 가장 구체적이고 궁극적인 실체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에게서 (별이 지닌 에너지로 생각할 수 있는) 기운이 넘치고 삶에 활력이 넘친다고 표현한다. 늘 기운과 활기로 가득 찬 사람을 보면 우리 역시 기운을 받게 된다.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 "포스가 함께 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은 그래서 더 와닫는다.
결국 ‘기(氣)’는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는 ‘춤추는 에너지 실’, ‘진동하는 끈’으로 상징되는 ‘움직임ㆍ운동ㆍ運動ㆍMovementㆍExercise’ 그 자체이며 모든 것과의 상호작용이다. 만물의 운행 원리는 우리 몸에 구현되어 있으며, 움직일 때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가 눈 앞에 펼쳐짐을 기억하라. "운동과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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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안내서에 대한 안내서: 움직인다는 것] 1장. 움직인다는 것_태초에 움직임이 있었으니
시작은 Movement
• 우리는 무엇인가? 고요함과 움직임 – 3
[운동 안내서] 삶을 변화시키는 힘! 운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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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몸만들기] 17년 만에 다시 쓰는 몸만들기와 운동 이야기
[완벽한 몸만들기] 몸만들기와 모든 운동 시작 전 꼭 알아야 할 사항들
[1] 기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에서
[2] 이기론理氣論, <두산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3] 기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에서
[4]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5] 기란 무엇인가? 객기ㆍ천기ㆍ생기?> 오마이뉴스, 2013.8.14
[5] p75, 제4장 ‘기氣’, 1. 기의 의미, 김종의의《동양의 길을 걷다》중에서
[6] P25-26, 제2장 ‘음양陰陽’, 1. 어원과 어미의 변화, 김종의의《동양의 길을 걷다》중에서
[7] P49, 56, 제3장 ‘오행五行’, 1. 오행의 성립과 의미, 김종의의《동양의 길을 걷다》중에서
[8] p73, 제3장 ‘오행五行’, 4. 음양오행론, 김종의의《동양의 길을 걷다》중에서
[9] p75, 제4장 ‘기氣’, 1. 기의 의미, 김종의의《동양의 길을 걷다》중에서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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