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란 무엇인가?
절대적 무.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를 간직한 그 특이점에서 대폭발이라는 움직임을 통해 우주가 탄생하고 별들의 진화 과정을 거쳐 생명을 잉태할 지구가 탄생한다. 원시 지구에서 마침내 생명이 탄생해 시간의 화살을 타고 수십억 년간 이어져와 현세 인류로 진화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될 확률은 10의 1,230승 분의 1이라는 계산도 있는데, 확률로 보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우주적 진화의 우연한 시작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우연히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아직 풀리지 않는 우주와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진화(Evolution)’ . 진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 상 모든 생명의 공통조상인 루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루카의 탄생으로부터 무려 45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해 왔다.[1]
진화론의 진짜 수수께끼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종의 기원》에서 추정한 공통조상 루카로부터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다. 다윈은 두 가지 가설에 기초해 이 문제의 답을 적어 놓았다. 첫째, 생명체가 번식을 통해 낳은 자손은 유전적 특징이 부모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다윈은 이것을 “생명체는 후대로 갈수록 수정(Modification)된다.”고 표현했다.
둘째, 자원에 한계가 있는 세상에서는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된 후손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다음 후손을 낳을 확률이 높아지고, 생존에 유리한 특질도 후손에게 전수된다. 이런 식으로 긴 세월이 흐르면 다양한 형태의 ‘성공적인 수정’이 서서히 누적되어 생존 능력이 탁월한 하나의 종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윈은 생명의 역사를 다룬 위대한 저작《종의 기원》을 다음 문장으로 끝맺었다.
끝없는 순환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것을 만든다.
그의 말처럼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가 ‘변화와 선택이라는 순환운동’인 45억 년의 진화를 통해 공존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는 절대적 무와 태초의 고요한 움직임이 그랬던 것처럼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자연의 거대한 움직임, 즉 끝없는 순환운동이며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질문은 여는 글에서 이야기한 폴 고갱의 마지막 유작을 통한 근본적인 물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는 마치 진화의 핵심 질문처럼 느껴진다. 고갱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생명과 인간 진화의 통찰을 보여준 다윈의 가설엔 크게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성선택(Sexual Selection)이 있다.
성선택설은 암수 진화와 같은 특수한 형질 진화의 경우, 종내에서 벌어지는 번식경쟁이 미치는 영향이 커 호모 사피엔스를 향한 첫 번째 단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생물학적 입장에서 진화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연선택설은 환경에 적합한 생물이 생존과 번식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에, 점차 그의 형질을 다음 세대로 퍼뜨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다윈은 인간에 의한 품종개량, 즉 인공선택과는 달리 자연선택은 자연환경이 진화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라고 비교해 설명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자연이 종의 진화 방향을 선택했다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자연의 손을 빌려 신이 진화에 손을 댄다거나, 혹은 자연이 뛰어난 존재의 탄생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종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공선택과 자연선택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목적의 유무다. 인간은 이익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생물의 번식에 개입하지만, 자연선택의 주체로서의 자연은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는다. 자연은 그 자체로 펼쳐진 환경일 뿐이다. 진화는 목적 없이 이루어진다.[2]
자연선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복제될 확률에 영향을 미칠 힘을 지닌 암호화된 정보와 차등 생존에 관한 것이다. 암호화된 정보란 유전자를 의미한다. DNA, RNA 같은 유전정보 조각들은 생명과 생명이 없는 것 사이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줄 육체를 찾아다니는 유전정보에 불과하다. 자신의 사본을 만들어낼 능력을 지닌 암호화된 정보, 즉 ‘복제자(Duplicator)’가 우주에 출현할 때마다 자연선택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생명이라고 부르는 이 특이한 현상과 마주칠 기회를 얻는다.[3] 이에 대해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에서 바라보고 진화를 설명한《이기적 유전자》,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허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눈먼 시계공》,《만들어진 신》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나는 우주의 다른 곳 어딘가에 생명이 있다면, 그 역시 다윈주의적 생명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는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이 고도로 복잡한 현상이 물리법칙으로부터 기원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봐요. 물리법칙은 공중에 돌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고 말하고, 그것으로 끝이에요.
하지만 생명은 물리법칙을 결코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비범한 일들을 해내지요. 달리고 걷고 날고 땅을 파고 매달려서 나무 사이를 건너고, 생각하고, 인류의 기술과 미술, 음악을 포함한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 대략 40억 년 전에 복제하는 실체가 출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실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전자와 동등한 무엇이었지요. 그것은 복제할 능력과 자신의 복제 확률에 영향을 미칠 힘을 지니고 있었고, 복제될 때 약간의 오류가 일어나곤 함으로써 생명 전체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 생물 개체가 대단히 돋보이는 단위이기 때문에, 다윈 이래 생물학자들은 생물 개체가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단위라고 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물었어요. “생물이 최대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물이 최대화하는 것은 어떤 수학 함수일까?” ‘적합도(fitness, 적응도)’가 바로 그 답입니다. 적합도는 생물이 최대화하는 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죠. 물론 실제로 적합도는 유전자의 생존입니다. (…) 해밀턴은 이를 수학적으로 규명했습니다.”
–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프리먼 다이슨(지은이), 존 브록만(엮은이)의《궁극의 생명: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최첨단 생명과학》 중에서
여기서 도킨스가 언급한 수학 함수 Fitness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D. Hamilton. 1936-2000)이 정의한 수학 함수인 Fitness(적합도, 적응도)는 한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고 그 세대에서 생존하며 다시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 확률을 말한다.
이미 익숙한 단어인 Fitness는 사전적으로 ‘신체단련’, ‘(신체의)건강’, ‘체력’이라는 뜻이다. 체력(Physical Fitness)은 특별한 형태의 신체활동을 위한 개인적 능력의 총합, 즉 육체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몸의 힘 또는 질병이나 추위 따위에 대한 몸의 저항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체력에는 건강한 체중과 신체구성뿐 아니라 심폐기능, 근력, 지구력, 충분한 유연성을 포함한다.[4]
신체단련, 즉 규칙적인 운동은 건강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확률을 최대화하고, 이는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를 통해 진화의 본질인 변화와 선택이라는 끝없는 순환운동의 의미가 생활 속 운동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운동이 자신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진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불변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화를 향해 앞으로 나가야 하는 존재이다.
물리학자이자《엘리건트 유니버스》,《엔드 오브 타임》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또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한 혁신’에 가깝다고 저서를 통해 이야기한다. 즉, 유전자의 무작위 조합과 변이를 통해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진화의 산물인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삶의 변화를 꾀하려면 시행착오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린의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여 보면 시행은 하나의 혁신과 다른 혁신을 생존 경쟁의 장에서 대결시키는 것이고, 착오는 실패한 혁신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업을 말아먹는 혁신이다.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제품의 일부를 무작위로 수정해서 파는 식이다. 만약 이렇게 회사를 운영하면 망하기 십상이지만, 자연에는 회사에 없는 막강한 자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공통조상 루카가 탄생한 지 45억 년이 흘렀다는 것을 떠올려보라.
목적이 없는 자연이라는 회사는 매사에 서두를 필요가 없고, 수익을 낼 필요도 없다. 진화는 그 어떤 의지도,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디자인하지도 않고, 시스템을 구축하지도 않는다. 그저 생존하는 데 유리한 변화와 선택이라는 순환운동 과정에 정착할 뿐이다. 작은 변화를 무작위로 일으키면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데, 자연은 이 비용을 시간으로 처리해 왔다. 거대한 우주의 시간 흐름 앞에서 진화는 아무런 목적이 없음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
진화의 개념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가 일어나는 현상인 생물학적 대상을 넘어 인간 사유의 방향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운동 안내서》의 핵심 주제인 운동 즉, 불변이 아닌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슈뢰딩거의 질문: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은 마치 흐르는 음악, 움직이는 춤과 닮았다고 했다. 이는 마투라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생명은 ‘자기생성의 주체’라고 했던 그는 생명의 진화를 자연선택과 달리 ‘자연표류(Natural Drift)’의 주체로 봤다. 다시 말해 도킨스의 주장처럼 DNA의 확정된 계획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만나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생명이라는 논리다.
그리고 예술가가 음악과 춤을 창조하듯 생명은 자기생성 즉,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진화란 한마디로 ‘방랑하는 예술가’였다. 자기를 창조하는 능력, 자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힘은 예술가의 에너지이자 생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의 기적 같은 다채로움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놓는다.
진화란 오히려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그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서 실 한 가닥, 깡통 한 개, 나무 한토막을 주워 그것들의 구조와 주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들을 합친다. 그가 그렇게 합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떠돌아다니면서 서로 어울리게 연결해 놓은 부분들이나 형태들로부터 온갖 복잡한 형태들이 생겨난다. 여기에는 어떤 계획도 없으니, 그저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가운데 생겨날 뿐이다.
– 움베르토 마투라나, 프랜시스코 바렐라의《앎의 나무》중에서
그가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자연표류라는 개념을 제안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대한 산꼭대기 가운데에 물을 부으면 그 물은 다양한 방향으로 표류하면서 흘러내려가게 된다. 어느 경우는 물이 더 흐르지 못해서 물길이 차단될 수도 있고, 다른 경우는 나름대로 길을 찾아서 지금까지 물길이 계속 이어져 올 수도 있다. 전자가 모습을 감춘 어느 종이라면, 후자는 우리가 지금도 확인하고 있는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자기생성을 하는 생명은 자연표류를 하면서 다양한 생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투라나는 진화를 방랑하는 예술가에 비유한 것이다.[5] 이에 더해 신영복은 자기생성의 의미를 이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이 유전자 결정론이자 자기 위로라면, 이상은 방랑하는 예술가이자 자기비판이다.
이처럼 마투라나의 생성은 생명을 DNA의 서바이벌로 설명하는 환원론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성의 의미를 이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위自慰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위는 생명이 서바이벌하기 위한 자기 위로입니다.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좌절과 파괴에 직면한 생명은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런 극한적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괴로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지워 나가는 심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잘못한 것보다는 잘한 것을 자주 반복 기억함으로써 생명을 격려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위로는 전체의 구도를 보수적으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 여러 가지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적극 의지를 기피하는 대응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기존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자위보다는 신랄한 자기비판이 더 필요합니다. 냉정한 자기비판은 일견 비정한 듯하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 줍니다. 적어도 서바이벌에 있어서 자위와는 다른 차원의 대응입니다. 물론 자위와 자기비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조화가 바로 그러한 담론입니다.
– 신영복의《담론》 중에서
창조적 행위를 하는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처럼 생명은 자신의 경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로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있고, 다른 생명체들 또한 그들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 리듬은 상호작용할 것이고, 하나의 새로운 리듬으로 결합하게 된다. 마침내 새로운 음악과 춤이 만들어진다. 세기의 아이콘 비틀스에 이어 BTS가 탄생해 세계가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원자로 구성된 유전자의 단순 조합물이 아니며, 유전자들이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 기계도 아니다. 우연의 산물인 우리는 날마다 어제보다 나은 나이기를 기대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기를 희망하지 않는가. 따라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뛰어가는 눈먼 DNA 같은 삶보다는 방랑하는 예술가로 지구를 여행하고 싶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가슴에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꿈과 낭만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진화라는 순환운동을 계속 이어갈 테니까 말이다.
진화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진화는 생명의 움직임이고 변화 그 자체이며,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로부터 변화되어 온 것이다. 변화 자체가 원래 상수다. 변화는 예외적인 게 아니다. 진화는 변화에 대응하여 적응해온 여정이었다. 그러나 서양적 사고에는 변화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부족하다. 정지와 불변을 지향하는 플라톤과 유클리드적 사고에 길들여진 서양 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적인 변화의 이념을 대표하는 진화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우리는 무엇인가? 정지와 운동>, <우리는 무엇인가? 고요함과 움직임 1, 2, 3>에서 이야기한 정지가 아닌 운동이 존재의 근원이자, 모든 존재의 시작에 놓여야 하는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왜 진화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설명은 필요치 않게 된다. 말하자면 세계는 변화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는 변화가 상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은 움직임 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생명이란 토마스 만(Thomas Mann),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이자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특정 순간에 탄생된 것이 아니다. 생명이란 하나의 움직임이고 움직임에 의해서 탄생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이란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형성에 의해서 탄생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생명의 탄생을 ‘움직임’의 상징인 물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그 물이 천상의 물이든 지옥의 물이든 상관없이.
- 에른스트 페터 피셔(Ernst Peter Fischer)의《또 다른 교양: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 중에서
절대적 무에서 고요한 움직임 빅뱅 이후 138억 년 간, 우주와 별 그리고 지구가 생성되고 단세포 생물체가 탄생했다. 이후 다세포 생물들로 그리고 다양한 종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발전’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세포로부터 다음 유기체가 형성되는 생명 단계를 말하며, ‘계통발생(phylogenesis)’과 ‘개체발생(Ontogenesis)’이 있다.[6] 이 두 개념은 ‘발생(Genese)’이라는 용어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으며, 어원은 그리스어로 ‘변화’라는 뜻이다(창조의 역사가 기술되어 있는 성서의 첫 권을 창세기[Genesis]라 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7]
생물의 발생에 관한 연구는 결국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응용분야의 유전학만이 아니라 생물 본질에 대한 발생학적 연구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진화란 인간을 만들어내는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발생하는 과정(개체발생)에 대한 이론이다. 즉 진화라는 순환운동은 진화과정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정확하게 말해서 진화운동 자체와는 구분된다.
진화과정은 원인 없이 우연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 과정은 좁은 의미에서 발생적인 유전자에 의해서 인도되고 조종된다. 이때 유전자들은 결코 독립되어 작용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대해 반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어서 다루겠지만, 이 능력은 외부의 변화를 내부로 받아들이는 ‘세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8]
《진화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Walter Mayr, 1904-2005)는 “진화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진화는 근본적 운동이고 변화의 근본 원칙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이뤄지고 있다. 한 개인의 일생을 놓고 봤을 때 건강과 체력의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운동은 개인의 아이디어와 생산성 그리고 건강과 행복을 더욱 진화시킨다.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게 되며, 늙어감의 시간을 최대한 느리게 해 줄 것이다.
■ 다음 연재 글:
[1부 – 안내서에 대한 안내서: 움직인다는 것] 1장. 움직인다는 것_태초에 움직임이 있었으니
움직임과 몸의 탄생
특성이미지 출처: Tim McDonagh, <Evolution is evolving: 13 ways we must rethink the theory of nature>
신안갯벌 이미지 출처: <[이 순간] 이토록 경이로운 갯벌이 사라져 간다> 한겨레, 2021.6.4
[1] 저자 주: 영국 브리스톨대학 지구과학대학원 연구팀예 따르면 루카의 출현 시기는 약 45억 년 전이라고 밝혔다. 원시 지구 '가이아(Gaia)'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던 행성 ‘테이아(Theia)’와 거대충돌을 일으켜 달이 생성된 시기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2] p73, 채사장의《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제로):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3] p17,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프리먼 다이슨, 존 브록만(엮은이)의《궁극의 생명》
[4] 멜빈 H. 윌리엄스의《건강 체력 스포츠를 위한 운동영양학 8판》
[5] 27. 생명의 논리란 무엇인가?”, 강신주의《철학 VS 철학: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서양 편
[6] 저자 주: 개체발생은 개체가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나는 발생을 말하며, 계통발생은 지질학상의 기간 동안 종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7] p430-432, ‘운동의 시작’,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또 다른 교양: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
[8] p432-433, ‘운동의 전개’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또 다른 교양: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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