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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Dec 24. 2018

오감

최근에 향초를 구입했다. 집에 오자마자 깨끗하게 몸을 씻고 침대에 눕기 전 캔들워머를 킨다. 따뜻한 조명과 은은한 향이 새어 나온다. 그 자체로 힐링이다. 향만 맡아도 몸이 살짝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2월의 겨울에 어렴풋한 눈더미가 스물스물 흘러내리는 녹음이 아니라 양초의 따뜻한 열을 받아 촛농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그런 녹아내림이다.


그런 한가운데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타자기 소리가 저벅저벅 들리고, 코 언저리에는 따뜻하고 풍부한 향내가 맡아진다. 이제 모두 잠들기 시작한 새벽, 이렇게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가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풍요롭다. 진짜 나와 마주치는 시간이 많다. 진짜 내 모습은 혼자 있는 순간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혼자 대화를 시작하고 몇 시간, 아니 며칠이 지난 뒤에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펜 대신 타자기 앞에 앉는다. 그리고 내 마음과 대화하며 조금씩 써 내려간다. 그 한순간의 감정의 떨림도 놓치기 싫다.


내가 가장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것도, 스스로를 학대할 필요도 없다. 세상과 유리된 기분이다. 그 기분은 좋다. 격리가 아닌 기분 좋은 분리됨이다.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선택적 분리이다. 나는 그런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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