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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Apr 22. 2019

두려움

관계를 형성해나간다는 것은 두려움을 야기한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저 어딘가에 있던 좋지 않았던 추억이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진다. 행복한만큼 불행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번민하는 걸까. 왜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맘껏 표현해내지 못하는 걸까.


사실 우리의 자아는 하나로 이루어져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를 ‘나’로서 하나의 객체로서 인지하고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세포들의 의사결정의 결과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느낌이 들다가도 바로 이윽고 다음 순간에 다른 느낌이 느껴지기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수천수억 개만큼 있다면, 그것은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것도 수많은 타인에게 공통적으로. 그래서 복잡도는 우리의 계산을 까마득하게 넘어가버리고, 우리는 때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곤 한다. 


그 순간, 우리는 계산한다. 생각한다. 느껴보고자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지만 좀처럼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시각과 기준으로 바이어스 된, 즉,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주이기도 하다. 망각의 축복으로 안내하지만, 무지의 지옥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 영겁과도 같은 ‘I’라는 프레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두려움을 안겨다 준다. 언제고 착각을 하며 살수 밖에 없는 나에게. 그리고 혼란스러울만치 불완전한 육체가 가져다주는 본능적인 열악함은 나를 더 두렵게 만들고.


느낌이 다가 아니다. 언제고 케첩 용기에서 짜 내어지듯이, 내 모든 것이 손쉽게 없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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