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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Jun 11. 2017

fake 그리고 real

사람을 대할 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 혹은 뭔가 그 사람의 껍데기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보통 상대방이 자신의 속을 감추고(혹은 자신의 진짜 속이 무엇인지 모르고) 남에게 보였으면 하는 스탠스를 갖고 사람을 대할 때 대게 사람들은 눈치를 채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 혹은 ‘가식적이다’ 혹은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마찬가지다. 내가 배우 한석규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석규는 연기가 아닌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저 연기를 잘하는 배우(누군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연기’를 잘하는 것이지 진짜 그 캐릭터, 그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완전히 비워내고 채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사실 99%의 사람들은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진짜 자기 속내를 잘 비추고 진짜 나를 잘 끄집어낼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면에서 감동을 느끼는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 자신이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본인은 어떤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본인이 좋아하는 향, 본인이 좋아하는 풍경, 본인이 추구하고 싶은 삶, 자신만의 세계관, 현재 삶과 본인의 이상과의 관계, 현재를 경영하는 본인의 태도 등 내가 나의 최고의 팬이 되어 생각해야 하는 모든 것을 내버려 둔 채 피상적인 삶의 요소들에 매몰되어 그게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삶에 대한 진정한 숙고가 없으니 진짜 본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2.    드러내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내 속내를 다 비추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이용해먹거나 혹은 이 세상은 많은 적들로 이루어져 있어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고 세상에 대한 경계의 태도를 어느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자리를 가져도 겉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할 뿐, 내 속 얘기가 나와야 하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버린다. 혹은 ‘나는 내 얘기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라는 말 한마디로 그 순간을 넘어가 버린다.


3.    속 얘기하는 것이 두렵다. 내 속의 내 모습은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모습인데, 그러한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이 두렵다. 상처를 입을 것만 갖고 아무도 내 진짜 모습을 이해해줄 것 같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강한 내 모습이 좋은 데 여린 내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면 남들이 나를 비웃을 것만 같다.


무엇이 정답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단둘이 술자리를 가질 때 상대방의 많은 속내를 끌어내려고 애쓰고 실제로 종종 성공을 거두는데, 이는 나부터 나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술자리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나와 그 사람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배경이 된다. 지금 상대방과 내가 하는 말, 생각,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가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런 몰입과정은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삶이 진짜 존재하는 구나하는, 무형이 유형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도록 도와준다.


사실 안 해본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남에게 진짜 내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차라리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피하는 게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진짜 내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진짜 ‘나’를 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나’를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마음의 거울을 하나 갖게 되고 진짜 내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제삼자의 눈으로도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무언가 나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은 어쩌면 바다를 보고 별을 보는 경험보다 더 경이로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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