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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Oct 05. 2017

‘나’를 발견하다

인생은 나 자신이라는 화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스티븐 킹이‘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소설을 쓰는 것을 이미 존재하는 화석을 발굴해내는 과정과 같다고 밝혔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발견해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게 된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한편 세상일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자신’에게는 정작 세상에게 주는 것만큼의 관심을, 주의를 가져보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모든 일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인데, 자신을 모르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시너지를 발휘하는 데 있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나는 네모난 인생을 살고자 하는데 정작 나의 모습은 세모라면 당연히 이는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데 있어 큰 퍼포먼스로 이어지지 못한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21살 군대에서 쇼펜하우어에 빠지며 인생의 허무론에 탐닉하기도 했었고, 복학하고 나서는 창업에 대한 꿈을 갖고 스스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기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떤 주제든 간에 한 번은 ‘나 자신’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 스스로만의 생각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세상살이도 나만의 방식을 갖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누가 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든 어떻게 생각하든 중요하지 않다. 생각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곧 죽을 테니까.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강남의 한 양꼬치 집에서 친구와 양꼬치에 칭타오를 먹다가 창밖을 자연스레 바라보았는데, 커플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놀러 온 그룹도 보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100년이 지나면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이 아닌가. 또한 100년 뒤 인류에게는 이 모든 사람들이 old news가 돼버릴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100년뒤의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고. 혹은 내가 운 좋게 매우 유명한 사람이 된 후 죽었다고 하더라도, 난 그저 교과서나 책 혹은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뉴턴’ 같은 사람이 될 뿐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게 뭐 대수랴. 난 이미 죽고 없을 텐데.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고 나를 기억하든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죽으면 그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람. 


결국 ‘나’를 발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오늘’을 잘 살기 위함이지 먼 미래의 후손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제대로 삶에 대한 나만의 프레임을 인지하고 오늘을 제대로 오늘답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발견'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떤 대단한 성취나 인류를 위한 발자취를 위해 발견이 중요성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쓸모없는 것들에 집착을 한다. 사실 죽으면 그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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