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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Oct 22. 2017

단풍도 내 마음 같아라

그거 아는가. 사실 단풍이 질 즈음에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나무의 잎사귀들이 굉장히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그야말로 울긋불긋하다. 도시의 삶에 찌들어서 잘 몰랐었는데, 자연의 색은 단색이 아닌 우리 언어의 인식을 벗어나는 다양한 색으로 춤을 추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색의 스팩트럼이 내게 정신사나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자연’으로서 ‘자연’스러운 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그곳에 머문다. 시선이 내리 꽂히는데 좀처럼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그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치 우리가 평소에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굳이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처럼 그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걸까.


고작 서른하고 조금 넘은 나이지만 벌써부터 자연이 즐겁다. 자연의 냄새, 자연의 색, 자연의 모든 것을 한 호흡에 느끼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마음이 치유된다. 따사로운 햇살, 하지만 약간은 쌀쌀한 날씨가 버무려져 적절한 따스함을 머금고 있는 가을 날씨가 너무도 좋다. 인간도 곧 자연의 일부임을 느낀다.


늘 포장되어 있는 도로, 높은 빌딩, 신호등, 횡단보도, 엘리베이터에 익숙해져있다가 그저 돌길, 숲길, 낙엽이 가득 쌓인 산길을 보면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질적인 성공을 한다고 한들 내게 앞으로 평생 봐야 하는 것은 저 멋대가리 없는 아스팔트 바닥뿐일까. 왜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면서 늘 시간을 쪼개어 자연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걸까. 뭔가 우리는 잘못 살고 있는 걸까.


벌써부터 숲 내음이 그리워진다. 숲은 나와 함께 호흡한다. 내가 고요하면 숲도 고요하다. 내가 소리치면 그 소리를 맞받아 친다. 나도 숲을 바라보고 숲도 나를 바라본다. 그런 따스한 풍경, 누군가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일 수 있는. 그렇지만 햇살의 따스함 때문에 외롭지는 않은 그곳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찾아야만 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그리운 걸까. 아니다. 우리는 항상 자연이었기 때문에 늘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곧 흙이다. 흙이 곧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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