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배웁니다 Oct 30. 2017

스며드는 감정이 좋다

거울을 보는 것은 내 취미다. 실내, 실외를 가리지 않고 거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가가 얼굴을 관찰한다. 눈, 코, 입은 잘 붙어있는지 머리는 잘 정돈되어 있는지, 혹여나 옷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등등. 시시때때로 외모를 점검한다. 사실 별로 달라질 건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차피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내 생김새는 하루 사이에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꾸 외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뭔가 증명받고 싶다. 이를 테면 ‘나는 이렇게 잘났어’라든지. 사실 다 허상이다. 그런데 그런 허상이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오늘나 자신이 뭔가 신기루 같은 것이 되어 저기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오히려 진짜 거울을 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대는 이렇게 잠들기 전, 몸과 마음이 정리되어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은 딱히 미래에 대한 고민도, 현실에 닥친 숙제도 크게 나와 상관이 없는 시간.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잠깐의 짬이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 뭐 개똥철학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삶과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


나는 멍 때리는 시간이 좋다. 그저 멍하니 우두커니 버스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바깥의 건물이나 숲이 움직이는 풍경을 보는 것이 좋다. 뭔가 특별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그 생각을 대신하는 시간대가 좋다. 나는 의식적인 생각을 하지 않지만, 따뜻한 풍경이 혹은 흥미로운 사람이 내 시선을 잡아끄는 시간대.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는 거라는 굳어진 생각이 있어서인가. 하루하루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흘려버리는 시간들이 오히려 내겐 훨씬 더 소중하다. 그때의 내 표정, 내 생각, 내 모습이 오히려 진짜 ‘나’ 같다. 그저 흘려버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시간들을 사랑하는 나.


시선이 마음을 대변한다. 나는 항상 어딘가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보든, 매력적인 여자를 보든, 좋아하는 장소에 가든. 항상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내 마음을 대변한다. 길거리에 비가 오고, 낙엽에 물에 젖고, 그런 풍경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굳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느껴지는 감정들, 나는 그런 스며드는 감정이 좋다. 그런 느낌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풍도 내 마음 같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