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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Nov 05. 2017

끝을 느낀다는 것

아직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햇병아리인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지만, 몸이 생각보다 둔해지는 걸 보니 절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보든지, 아니면 어딘가로 움직이든지 예전의 예리하고 날렵한 모습을 사라지고, 점차 세월의 무게와 싸우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 이게 세월인가. 세월은 참 야속하다. 군대를 마치고 세상에 뛰어든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건강을 슬슬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 몇십 년만 지내면 나도 노년층, 사회의 뒤켠에 물러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일까. 


어쩌면 먼 미래에는 죽지 않고, 장기를 교체하며 끊임없이 살아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과학 예측의 영역을 제외하고 오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나는 분명 어제보다 오늘 더 죽어가고 있다. 생체시계는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정확히 종착역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와 동일한 방향으로 죽음의 시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배우 김주혁이 사망했다. 그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배우였다. 그에게는 앞으로도 달성해야 할 수많은 목표가 있었고, 그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해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그 타이밍에 심근경색이 왔고,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운명론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하필 그 타이밍에, 그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하늘이 그를 이리도 빨리 데려간단 말인가. 이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시선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나는 점보다도 못한 존재로 보이니, 결국 이대로 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시점에 죽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하는 회의주의가 싹트기도 한다.


사실 나도 결론을 잘 못 내리겠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 그게 아닌가, 그렇다면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인간의 외면과 내면이 환경과의 영향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변하고 내가 가진 인생관이 그대로 올곧게 끝까지 평생에 걸쳐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비열하게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내 생각을 바꾸어가며 처신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인간만큼 자기합리화에 능한 동물도 없다. 우리는 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포도를 따먹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으면 필시 저것은 맛이 없을 거다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는 동물이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을 수도 있는 건데.


인생은 요지경이고, 시대에 따라 시대를 지배하는, 각광받는 패러다임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때론 중심을 잡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중심을 잡지 않으면 인생은 이내 너무 피상적으로 환경변수에만 영향을 받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원칙을 지키면서 산다고 해도, 누가 특별히 그 대단함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 순간마다- 이따금씩 본인도 그 원칙을 지키면서 맞는 건지 헷갈릴지도 모르지만 -1.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고 2. 그것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3. 지속 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계속 밀고 나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그리고 심플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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