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롭잖아
인간은 항상성을 싫어한다. 늘 한자리에 같은 상태로 머무르는 것을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어한다. 늘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 자체에 극도의 허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 도시에 사는 이들은 시골의 평온한 삶을 꿈꾸고,
- 시골에 사는 이들은 도시의 화려함을 좇는다.
- 커플인 이들은 때로는 혼자 있고 싶고,
- 싱글인 이들은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
- 부모와 동거하는 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고,
- 혼자 사는 이들은 때때로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립다.
인간은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모양이다. 우리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현실의 그저 변하지 않는 삶에서 '간편하게' 그리고 '잠시나마' 일탈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잠시도 못 견뎌한다.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 이동을 할 때면,
- 우리는 잠을 자거나
-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이나 게임을 한다.
한마디로 그냥 ‘멍 때리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행동인 ‘독서’조차도 사실은 일종의 뇌에 자극을 주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헤어지면, 특히 큰 사랑을 하고 헤어진 경우라면 더욱, 사랑 자체에 대한 큰 거부감을 갖게 된다. 적어도 당분간이라도 내 인생에 사랑을 지우고 싶다. 혹은 누군가의 몸은 그립더라도, 감정을 섞고 마음을 주는 행위는 망설여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정말 많이 흐르면 인간은 다시 사랑을 원하게 된다.
분명히 그때의 힘들던 기억,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던 기억, 정신을 못 차렸던 기억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기꺼이– 설령 미래가 고통으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더라도 –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이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게 바로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길로 뛰어들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뒷날 고통으로 다가오든 아니든, 오늘 뭔가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몰입한다. 내일은 내일이다. 아무렴 어때. 오늘의 무료함을 지금 이 순간 사랑으로 불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내 무엇이든 하리니.
인간은 참 어리석다. 자극을 위해 많은 것을 내버린다. 지금껏 쌓아온 부, 명예, 권력, 지식을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정말 어이없게 내버리기도 한다. 근데 그게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자극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오늘’을 추구한 결과가 문명이니 자극은 순기능과 부정적인 모습을 두 개다 갖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궤변이 길었지만 어쨌든 나도 사랑을 할 거다. 젊은 남성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판타지가 ‘사랑’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