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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듬 Sep 29. 2022

아빠 책

어쩌면, 마지막

아빠가 이사를 하신다.

되도록 더 쾌적하기를 바라며 새집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버리겠다 결심하시기에

책은 거의 들고 가지 않으시겠단다.


평생 같이 했던 책들,

내가 미취학 시절부터 유리 책장 안에 있던 분들이다.

글자를 알고 나서는 몰래몰래 꺼내 만지고 읽던 분들이다.

실수로 한 권 잊어버리고 달달 떨었던...

나와는 추억이 많은 아빠 책.

나는 선뜻 모셔왔다.


앙드레 말로와 조르바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했던 날들을 추억한다.

이제 훨씬 가볍고 산뜻한 책들로 이미 내 서가에도 자리하고 있으나,

버리기를 아쉬워하는 아빠에게

내가 잘 읽을게요, 버려지지 않아요,

안심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당신이 정리한 판소리 악보와

대자전, 국어사전, 역사사전, 인물 대사전은 들고 가신단다.

막내는 텔레비전 보는 일도 힘드신데,

어찌 보시냐고 샐쭉대지만

그 마음 알 것 같은데, 책에게 기대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애잔함

함께 한 시간만큼 정이 쌓이는 일이

어찌 사람에게만 한정되랴.


사물과도 상생한다.

교감하고 손잡는다.

아우야,

아이야,

나는  라이너스담요를 널리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마지막 이사,

아빠는 당신의 몸을 가볍게 하고자 하신다.

무게를 적당히 덜어내고,

마음을 더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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