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과 느림
두달에 한번씩, 일년에 총 5회 전혈은 가능하다.
22번째 헌혈이다.
엄마가 되겠다 결심한 아우가 집에 머무르면서 화요일은 도리어 분주해졌다.
헌혈의집 초코파이가 최고라며,
매번 다른 곳을 가고 싶다고 주장하는 아우를 위해
교외선을 타고 의정부까지 가서 헌혈을 한다.
무궁화호는 좀 느슨하다.
다들 각자 나름의 수다를 떨고,
통화도 객실에서, 벨소리도 다 목청높다.
물론 평일 낮을 지배하는 건 노인들이기도 하기에
그들의 평화롭고 번잡하며 소란스러웠던 그 시절의 기차를 재현하듯이 느껴진다.
기차역시 엄한 ktx처럼 예의를 강조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말을 섞고 누군가의 수면을 방해하거나
취객의 코골이도 용인된다.
시간여행으로 느껴진다고, 아우는 진술한다.
나는 장흥과 송추 등지에서 쇠락한 레저타운들과
번성하는 초록을 구경한다.
건너자리 아줌마 딸의 연애흥망을 엿듣는다.
기차는 한없이 느리게,
여유롭게 우리를 달래준다.
시집 한권을 서너번이상 읽어도 좋을 이 한가한
여행이라니...
엄마는 곤히 낮잠을 청하시고,
다시 창밖은 초록만발이다.
기차 역시 몹시 삐걱이고 흔들거린다.
허나 이 순간은 아름다울 뿐,
내 우주의 이 하루
한없이 평화로울 뿐,
반짝이는 비닐하우스가 낮별처럼
흐뭇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