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종료의 좋지 않은 사례
내가 언어치료에 한 일억 썼거든요,
내가 이 지역 치료실 다 가봤는데,
결국은 나랑 놀면서 아이가 좋아졌어요.
아이가 싫어하길래 안 갔어요.
아이가 좋아해서 그냥 좀 갔어요.
학교 가기 전에 열심히 하면...
장애학교는 안 보낼 거라서요.
그들이 남긴 어록이다.
나는 그 모든 말에 대꾸했다
틀린 진술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치료실을 다 흝었다는건 치료자를 쉽게 만나고
또 쉽게 끝냈다는 것이고,
돈의 액수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꾸준히 열심히 했느냐를 가늠해 보는 일이 우선이다.
부모랑 즐겁게 놀면서 좋아졌다면 굳이 치료실을 보낼 필요 없이 계속 놀면 될 일이고 학교 가기 전에 주 1회 치료로 갑자기 기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분명하다.
아이는 똘똘했고 자폐성향 특유의 모노톤과 상동행동이 있었다.
고집과 돌발과 고성이 있었으나,
나름의 인내와 타협도 있었다.
몇 달은 열심히 만났다.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정리했고,
학교 가기 전에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목록들을 적었다.
아이의 부모는 어느 날 일방적으로 그만 갈게요,를
던졌다.
15년 이상 일을 해오면서 이렇게 무례한 부모는 드물다.
의사가 뭐 하라고 하니까 굿바이, 나는 아이랑 작별도 못했는데... 옳지 않은 반응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들쭉날쭉 만나고 헤어지고
어떤 전문가를 믿고 우르르 갔다가 또 오고,
다시는 그 아이 스케줄을 잡지 말아 주세요,
데스크에 신신당부한다.
다소 건조했던 몇 번의 상담,
어떤 마법이 일어나 일반아동이 되리라는 헛된 믿음,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무례가 아이를 더욱 고립시킬 겁니다.
학교 가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을 골라서 선물하려던 내 손은 잠시 몹시 당황했다.
사실이다, 허나 곧 중심을 잡는다.
끝없이 아이들은 학교를 가게 되겠지.
관계, 자체를 한없이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그들이
부디 아이를 윽박하지 말고 그저 사랑과 기다림으로 마주하기를 기도한다.
그래, 부디 학교에서 아무런 순간도 없이 무사하기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영영 모르기를.
이이와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