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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Sep 17. 2020

0.3mm를 향한 열정

감정 요리/ 열정


불광 불급 (不狂不及).

미쳐야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에는 마력이 있다.  마력은 어려움이 눈 앞에 보여도 제어할 수 없는 힘에 빠져드는 힘이다. 마력에 빠져 노력하는 시간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인생 묘미가 아닌가!


커피에 빠져 카페 투어를 다니면서 커피에 미쳐 있었다.  물을 마시듯 커피를 마셨다.

내 몸을 빨래 짜듯 짜면 커피 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카페를 찾는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커피 맛,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편안하고 오래 앉아도 좋은 그런 카페를 찾아다녔다.

내가 걸음을 한번 더 한 카페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책과 커피는 떡볶이와 튀김처럼 서로를 더 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커피는 등불처럼 책에 집중하게 해 주었다.



딸아이가 고3 때 도서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집 일층에 공방 같은 카페가 있었다.


그날도 아이가 과외 수업이 있어서 간식을 챙겨 주고 일층 카페로 내려갔다. 일층 카페는 커피 맛은 평범했지만, 도자기 공방에 책도 있고 시간 보내기엔 괜찮은 곳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중년 여자분이 나를 맞이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앞머리에 고슬기가 있고, 하얀 피부에 립스틱만 살짝 바르고 작은 입술을 가졌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다소 차갑게 들렸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문한 핸드 드립 커피가 나왔다. 도자기로 만든 커피잔에 맑은 빛을 띤 커피를 마셨다. 별 기대 없이 마셨는데 입안에 개운함과 샐비어 꽃술에 달콤한 맛이 돌았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 빛에, 나는 커피 맛이 어땠는지 말해 주었다.  그녀는 내 미각을 칭찬해 주었다.  여자분은 당분간 사장님 대신 카페를 맡아 운영한다고 했다.

이후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 이야기하면서 친해지듯 커피 한잔으로 친해졌다.


커피에 이끌려서 그런지 출근부에 도장 찍으러 매일 갔다. 그녀는 핸드 드립 할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온통 커피를 내리는 물 주기에 집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영험해 보이던지 숨죽이면서 커피를 기다렸다.  종교의식처럼 커피 내리는 모습은 다른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에게 왜 그렇게 내리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핸드드립은 바리스타의 영혼을 집어넣는 일이라서 오롯이 커피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했다.

영혼을 담는 커피라니 신비로웠다. 커피의 맛과 향을 찾아다녔는데 영혼까지 마실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탄하는 내 모습이 대견했는지 주문하지 않은 커피 한잔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게 어떤 것이 느껴지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오는 수라간 궁녀가 된 기분이었다. 온 미각과 후각을 동원해서 커피 향과 맛을 말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 커피의 원산지가 어느 나라 일 거 같은지 물어보았다. 처음 마신 커피와 다른 향과 맛이라서 자신 있게 원산지를 대답했다.  그녀는 예상하듯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면서 내가 대답한 원산지와 다른 답을 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처음 마셨던 커피와 같은 원두이라는 것이었다. 어이없어하는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핸드드립 할 때 모든 것을 같은 조건을 적용하고, 드립퍼와 물을 내리는 물 주기에 따라 같은 조건이지만 다른 커피 맛과 향이 난다는 했다. 그래서 자신을 핸드 드립에 영혼까지 담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한다.

드리퍼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는 커피 수업 때 들은 적은 있었지만 ,

이렇게 세밀하게 설명 주진 않았다.  갈아진 원두에 물이 닿았을 때 물을 머금은 시간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지다니 흥미로왔다.  새로운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내리는 핸드드립을 배우고 싶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그녀와의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렇게 재미있으면 배워보라고 했다. 나는 남편 마음이 변할까 싶어서 저녁식사를 하고 일층 카페로 내려가 그녀의 커피를 맛보게 하고 커피 수업을 의뢰했다. 그녀는 커피 수업을 제안한 나에게 개인수업은 해 보지 않아서 망설여진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를 수업을 해 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실랑이는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조바심에 입이 말랐다.

"알겠어요. 수업할게요."

선생님의 그 한 마디에 나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것 같이 기뻤다.


다음날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원두의 특징과 커피를 추출할 때의 주의점에 대해 공부했다.

이론적인 공부가 끝나고 핸드드립 실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된 그녀는 실전을 가르칠 때는 차갑지만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핸드드립에 첫째도

둘째도 모든 과정에서 0.3mm의 물 주기가 해야 한다고 물 주기 연습만 하루 종일 했다.

피아노 배울 때 손가락 연습하듯 750ml 물을 담은 주전자를 엄지와 중지로 들고 천천히 흔들리지 않게 0.3mm의 가느다란 물 주기가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웠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호흡이 거칠거나 하면 물 주기 흔들리고 이어지지 않았다.

물줄기 연습만 하루에 5시간씩 2-3주 연습한 것 같다.  

핸드드립 할 때 여러 가지의 물 주기 방법이 있다.  선생님의 물 주기는 고노 드립 방식인데 투과 식 드립이다. 커피에 물줄기가 떨어질 때 충격을 최소화해서 천천히 향과 맛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추출된 커피는 원두 맛을 고스란히 추출할 수 있다. 핸드드립 물이 머무르는 시간에 따라 같은 원두라도 맛과 향이 달라진다.

  

고노 드립은 중앙에 점으로 원을 그리듯이 물을 적시는 방식이다.  물줄기가 흔들리거나 끊기면 좋은 원두를 사용해도 미숙한 커피 맛이 난다. 커피 수업을 받으면서 선생님이 핸드드립 할 때 집중하면서 숨죽이게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 물줄기 연습이 어느 정도 되고 원두를 담고 물줄기를 내려 보았다. 첫 물방울이 커피에 떨어지는데 커피가 화산 폭발하듯 드리퍼 밖으로 날아갔다. 당황해하는 나는 실수한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면서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도인처럼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급했다고 하셨다.  그 물줄기가 뭐라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경험 때문인지 이후 커피를 내릴 때마다 첫 물방울에 신경이 곤두섰다. 손도 떨리고 심장도 떨렸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가도록 별 진전은 없었다. 그런 나를 본 선생님 연습만이 답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신랄한 비판을 했다.

 "이렇게 할 거면 영혼을 커피를 내리는 건 포기해야겠다."

그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졌다.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병원 진료가 늦어져서 카페 문만 열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 카페 불을 켰다. 손님, 학생도 아닌 카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커피 연습을 하려고

원두를 갈고 주전자에 물을 담았다. 드립을 시작하려고 할 때 손님이 들어왔다.

“지금 커피 되죠?

“아니요. 사장님이 출근 안 하셔서 30-40 분 기다리셔야 되는데요.”

“아! 카페인 부족인데. 그냥 대충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된다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배운 대로 내려서

팔아보라고 하셨다. 준비가 안된 나에게 두 사람이 벼랑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손님도 커피를

간절히 원하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면서 커피를 주문했다. 떨리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

시키면서 브라질 산토스를 드립 했다. 손님은 고맙다면서 커피 값을 지불하고 가셨다. 손에 오천 원짜리가 쥐어지자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멍했다.

손님이 가시고 십여 분이 지나고 선생님이 나타났다. 선생님은 들어오면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첫 드립을 축하한다고 했다. 손님한테 나가고 조금 남은 커피를 선생님께서 마시셨다.  

나는 긴장되었다. 선생님은 심각할 정도로 나쁘진 않지만 추출되지 않은 맛이 있다고 했다. 연습하면 된다고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나쁘지는 않다는 말에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선생님과 스타벅스를 간 적이 있다.  나의 고향 집 같은 스타벅스의 커피를 두고 선생님에게 쓰레기 물이라고 하셨다. 신선하지 않은 원두에 치장만 잔득한 영혼이 없는 커피라고 화내셨다.

선생님은 핸드드립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하는 커피라고 하셨다.


나의 첫 핸드 드립 커피를 선보인 후, 연습 강도는 더 세졌다.




추천 레시피


미치도록 하고 싶고, 가슴을 뛰게 하는 신선한 자극.

그런 자극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유연해야  한다.

건강함과 유연함 속에서 열정이 나온다.

식물의 빨갛고 노란색에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있다.

항산화 물질은 마음과 몸에 나이가 들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양소이다.

열정을 싹에서 나무로, 숲으로 키워나가는 이들을  응원하는 레시피이다.




살사 소스를 이용한 오색 샐러드

Salade de 5 couleurs à la sauce de salsa


색을 가진 과일과 채소에는 파이토 영양소가 있다.

빨간색은 리코펜과 엘라그산/ 초록색 베타카로틴, 루테인, 제이크산틴/ 흰색은 알리신, 케르시틴/

노란색, 주황색은 알파-카로틴, 베타-크립토크산틴/ 보라색은 안토시아닌, 레스베라트롤

오색을 골고루 넣은 샐러드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열어 준다.  색이 강할수록 향기가 강하다.

살사 소스를 이용해 강한 향이 지나치게 두드러지지 않게 맛의 균형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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