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던 시절에도, 나는 하루를 저축했다

by 지니



요즘은 1억을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20년 동안, 매일같이 저축했다.
큰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단돈 만 원이라도,
그날의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저축하려고 했다.
그 만 원이
언젠가 1억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을 버텨내면 내일이 올 거라고 믿었을 뿐이다.
시어머님이 아프셔서
입원비와 수술비로
천만 원이 넘는 돈이 한꺼번에 나갔던 적도 있다.
그 돈이 아까웠던 건 아니다.
다만 그 순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해졌을 뿐이다.
누나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원망을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더 아껴야 했고
더 흔들리면 안 됐고
하루라도 저축을 빼먹을 수 없었다.
그 시절의 삶은
희망이 없었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나에게는 잘 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희망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오늘을 넘기는 일을 선택했다.
희망이 없던 삶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매일 만 원을 저축했던 건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삶을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는
나만의 증거였다.
우리 아들이 유치부 일 때의 일이다.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이는 사과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 사랑스러운 얼굴로
사과의 강탱이를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거 먹어.”
그리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걸 나에게 건넸다.
온 식구들이 한바탕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동안 나는
맛있는 부분은 아이들과 어른들께 드리고
늘 가장자리를 먹어왔다.
아이의 눈에는
그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아끼고 참아온 시간들이
아이에게는
사랑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다.
그건
희망을 굳게 믿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없어도
하루를 끝까지 살아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저축한다.
돈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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