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은 길을 믿어온 사람들이었다.
바른 길,
틀리지 않은 길,
이미 검증된 길.
이 길이 지름길이고
이 길이 빠르니
이 길로 가라고 말해왔다.
그건
통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덜 다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돌아가면 늦어진다는 걸.
옆길로 새면 더 힘들어진다는 걸.
그래서 아이에게
미리 정해둔 길을 보여주고
그 길로만 가길 바랐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길로만 가지 않았다.
곧은 길 옆에
무슨 길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고,
잠깐 벗어나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
돌아가게 되더라도
혼자 헤쳐가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힘들었고,
우리도 많이 지쳤다.
아이에게는
막아서는 어른이 답답했고,
우리에게는
느려지는 아이의 걸음이
견디기 어려웠다.
사실 우리는
아이 인생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본인 인생이니
아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디게 가는 게
너무 또렷이 보였을 뿐이다.
그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다.
우리는
아이의 현재를 걱정한 게 아니라
아이의 시간을 대신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기회를 놓칠까 봐,
다시 따라잡느라 더 아플까 봐.
그 불안이
아이를 향한 말이 되어
자꾸만 앞에서 길을 막았다.
요즘에서야
조금씩 알게 된다.
아이에게는
곧은 길보다
자기 눈으로 확인한 길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빠른 도착보다
혼자 도착해본 경험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우리는
아이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너무 잘 알아서
아이를 서두르게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이는
세상을 아직 다 모르기 때문에
직접 부딪혀보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 차이에서
서로 많이 다쳤다.
요즘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대신 네가 선택한 길이라는 건
잊지 말자.”
그 말이
아이에게는 허락이 되고,
나에게는 내려놓음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길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길이 달라도 함께 걸어주는 일이라는 걸
이제서야 배운다.
느려 보여도,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길이
아이의 길이라면
우리는
조금 뒤에서 같이 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