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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Nov 10. 2020

함부로 정의하지 않기

<체 게바라 평전> / 장 코르미에

‘프롤레타리아를 강타하는 비극은 가장 밑바닥부터 잠식해 들어온다. 광채가 사라진 그들의 눈동자에는 복종과 체념만이, 공허한 표정에서는 잃어버린 위안을 갈구하는 절박하고도 절실한 열망만이 읽힌다. ... 불합리한 사회적 신분 개념에 뿌리를 둔 이러한 질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정부가 통치 성과를 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하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의사이며 고고학자, 작가, 언론인, 사진사, 시인, 체스 선수였고, 거기에 운동까지 열심히 했던 그는 머지않아 게릴라, 국립은행의 총재, 장관, 그리고 대사직까지 수행하게 될 것이었다. 체가 다면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의 ‘나’는 집요하고 어김없이 바로 ‘우리’로 향하고 있었다. 즉, 그는 각각의 면이 다른 쪽을 보고 있다가도 결국은 한 데로 모이게 되는 만화경 같은 인물이었다.’

‘체에게 있어서 게릴라전이란 정확함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들은 재미로 살상을 하지 않는다. 적을 대할 때조차 인간을 존중하는 자세는 승리한 뒤라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체는 이 점을 자신의 전우들에게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반대편, 즉 바티스타 독재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군인들 중에는 전적으로 악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주지하도록 강조하였다.’

‘게릴라란 흔히 여겨지듯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강력한 군대에 대항하는 소수 과격파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게릴라전이란 압제자에 대항하는 전체 민중의 싸움이다. 게릴라는 민중 군대의 전위에 지나지 않는다. 작게는 어느 한 지역, 크게는 어느 한 나라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형성한 군대의 주력이 게릴라이다. 아무리 심한 탄압 아래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는 이기게 되어 있는 게릴라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일반 민중이야말로 게릴라전의 바탕이자 본질이다.’

‘젊은 공산주의자의 의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입니다.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이라는 말은 최고의 인간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최고의 인간은 노동과 학문, 이 세계 모든 민중과의 부단한 연대를 통하여 정제된 인간입니다. 이 지구상 어디선가 무고한 목숨이 꺼져갈 때 함께 고통을 느낄 수 있으리만치 감성이 계발되어 있으며, 자유라는 깃발 아래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인간입니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기층 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 한편 공산국가는 자유에 관한 한 전체주의적인 개념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혁명은 쿠바만의 주체적인 혁명이어야 한다,라고 카스트로는 썼다.’

‘체는 늘 인간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무언가를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사변적인 방식에 의존하기보다는 인류학과 사회학, 심리학, 철학이라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보려고 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특히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해보았지만 굳이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만 한정시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체는 정치 혁명의 일정 안에서 민중의 역할, 즉 민주주의의 실행에서 민중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는 고찰을 지양하였던 것이다. 체는 행정부 각 기관의 대표들은 늘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했던 장 자크 루소처럼 직접적인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었다. 한 법안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민중의 표결이 있어야 한다는......체는 앵무새처럼 지침서에 적혀 있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고 요구했다.’

‘... 이 새로운 단계에서 민중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 없이는 우리가 너무도 열망하였던 사회주의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도, 또 그 안에서 일할 수도 없다. 이 사회주의 사회는 당연히 절대적인 민주사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민중의 필요와 열망 위에서, 또한 민중이 모든 결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 위에서 건설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혁명가라는 타이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고집스러움이 없지 않으나,

그는 ‘고결하다’라는 표현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언어에만 그를 옭아맬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이념으로 끝나서는 안될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자 스스로 먼저 삶으로 보여준 그의 걸음들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방식이 ‘무장 투쟁’이라는 게 안타깝다.

안타까운 이유는 그 건너편 제국주의자들의 잔인함이 보여서다.


그래서 나는 그의 과정을 기억하기로 했다.

고결한 그의 걸음들을,

오래도록 아우라를 비추는 그 삶의 여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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