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 놀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가 Jun 09. 2021

신과 인간의 이야기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 / 호메로스

“오, 가여운 어른이여! 어떻게 혼자 이곳까지 왔나이까? 어떻게 그대의 고귀한 자제들을 모두 죽인 이 사람을 감히 두 눈으로 보시나이까? 어서 자리에 앉으소서. 잠시 우리의 슬픔은 가슴속 깊숙이 묻어둡시다. 이는 신들이 가련한 인간에게 지워 주는 운명의 거미줄이지요. 제우스의 궁전 안에는 두 개의 선물 항아리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물건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 들어 있답니다. 천둥신은 이것을 뒤섞어 인간에게 주었지요. 바로 나의 아버지, 펠레우스도 그렇습니다. 신들은 그분에게 날 때부터 영광된 선물을 주셨으므로 재화나 부에서는 부족할 게 없었지요. 미르미돈 전역에 걸친 군주요, 비록 인간의 몸일망정 여신을 아내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분에게 또한 화를 내리셨지요. 외아들인 나는 그분보다 앞서 죽을 운명이랍니다. 더욱이 연로하신데도 아들인 나는 봉양 한번 못 했습니다. 나는 이곳에 머물려 그대를 괴롭혔고, 자제들을 무찔렀습니다. 
 듣자 하니 한때 대왕께서도 해상으로는 마카르의 영지 레스보스까지, 육지로는 프리기아까지 부와 자제를 지닌 지상의 권위자였다고요. 그러나 하늘의 신들이 그대에게 이러한 참화를 내려 전쟁과 살인밖에 없으니 대왕이여, 부디 상심치 마시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죽은 자식을 살릴 길은 없나이다.”




드디어 오랜 숙원이었던 일리아스를,

그림의 힘을 얹어 읽었다.

아직 오디세이아가 남았지만 반쯤 해냈다는 묘한 기쁨을 느낀다.


내가 일리아스를 읽고 싶어 진 건

기록된 서양 문학의 효시라는 명성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게 느린 나는 현재의 것들에서 묻고 읽다가 조금씩 거꾸로, 거꾸로 

결국 처음이 궁금해진 게다.


그 ‘처음’의 반쯤 보며 든 생각은 기대보다 단순하다.


신으로 불리는 불사(不死)인 신들의 욕망과 실수,

그들 아래 필사(必死)의 존재인 인간의 욕망과 실수.


하데스의 문턱을 넘어가는 자들과 그럴 필요 없는 자들 모두

본능과 욕망에 매여 있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들 이야기는 모양만 바뀔 뿐 여전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욕망의 추악함을 알고도 극복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래서 

신이 뭐 이래, 라는 생각보다

옛날 사람들 참 못났다, 라는 생각보다

지금의 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욕망과 본능에 휘둘려 고뇌하는 나를 보게 되는 거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읽고 싶어 졌을 때처럼 

일리아스가 내게는 

문학사적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찌하기 힘든 인간의 뿌리를 보고 겸손하게 만드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할 수 없는 여행자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