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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19. 2021

여행할 수 없는 여행자의 일상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오소희

‘사랑하는 추억을 수시로 바라볼 수 있게 과감히 집을 꾸릴 일이다.
길에서는 그런 추억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질 일이다.’


‘행복을 알아보는 지혜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달려가던 나는 멈췄다.

찾던 것을 모두 찾아 멈춘 것이 아니라
멈출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멈췄다.
행복해져서 멈춘 것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에 담담해져서 멈췄다.’


‘집에 꾸준히 나다움을 담을 고민을 한다.
그로써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내가 나다워질 궁리를 한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면
늘 걸음에 굶주린 사람처럼 걷는다.
몇 정거장쯤은 당연하게 걷는다.
20분이면 광화문에 닿는다.
운동화 안창과 마찰하는 발바닥이 
뜨뜻하게 달아오른다.
겨울이면 뺨과 손가락이
바람에 차갑게 얼어붙는다.
여름이면 정수리가 뜨근해지고
때때로 나무 그림자가 선연하다.
살아 있다고 느낀다.

'장장 20년에 걸쳐 몹시 부산스러웠던,
마음과 시간을 마구잡이로 점유했던
‘육아’ 소동이 끝난 게 분명하다는 걸
분방한 걸음이 친절히 확인시켜준다.

다시 내 시간의, 공간의, 관계의 
온전한 주인이 되었음을.'


'다행이다.

아이를 낳기 전,
한때 내 시간, 공간, 관계의 젊은 주인이었을 때보다
나는 많은 것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이 다스림은
아직 죽음과 같은 안정이 아니다.
딱 삼 첩 반상 같은 안정이다.
궤도 밖으로 방황할 필요는 적어졌고
제자리에서 소담스럽게 나눌 이유는 많아진.
그런 삶을 간절히 소망했다.'




안정을 찾았다는 그녀의,

아마도 십수 년 전과 비슷한 시간을 살고 있는 나는,

그 불안정한 날들 중 어느 하루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작정 걸으러 나갔다.

무작정 걷던 걸음은 책방으로 향했고

그녀의 책 앞에 멈춰 섰다.


5년 전 영국으로 갈 때 나는 그녀의 책을 들고 떠났다.

실은,

이전에 그녀의 책을 나는 부러 읽지 않았다.

나와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그녀의 책에 주눅이 들거나 자칫 내 삶이 별것 아니라는 자책에 빠질까 봐.


다행히 책을 읽고 느낀 내 소감은 휴, 에 가까웠다.

아직 그녀만큼 익지 못할 수밖에 없구나 나는, 과 같은 합리화를 얻었달까.


그리고 그녀와 나는 비슷하지만 같지 않음을 느끼고 안도했다.

또한 그녀가 길에서 얻은 지혜를 나도 내 길에서 얻겠지 생각하며 위로를 얻었다.


이번에도 나는 책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하필 마음이 바닥일 때 이 책을 펼쳤다가 더 주저앉을까 봐.


에라 모르겠다, 책을 펼쳤고

나와 너무나도 같은 이야기와 심정들이 읽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책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듦과 동시에 당장 사진을 찍어 남편과 공유했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나는 몇 번 더 눈물을 훔쳤다.


아직은 그녀가 닿은 지혜에 닿지 못해 허둥대는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 길을 걷느라 애써서 내가 힘든 거구나 싶어 드는 안도감.

더불어 이 아픔이 정당하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위로가 되었던 거다.


그녀와 나의 나이차는 얼핏 보니 열서너 살쯤.

중년이라는 나이에 닿기까지 나는 조금 더 흔들리고 아파야 하리라.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보다 되려 긴장이 풀린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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