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 정다연
…
이곳은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아
이곳에 더는 새가 날지 않아
태풍이 부드럽게 새 한마릴 납치해
이끼 낀 석상 위에 산 채로 보내주는 일도 없어
인간이 멸종마저도 멸종시켰기 때문에
또다시 절벽은 절벽이지 둥지가 되진 않아
종려나무는 종려나무가 되기를 멈추었어
씨앗은 씨앗이길 포기했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씨앗이 씨앗이기를 감수하고
종려나무가 종려나무 숲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기까지’
<밝은 밤의 이웃들> 중에서
어두운데 어디엔가 따뜻한 걸 감추고 있는 듯하고,
우울한데 밝은 숨 하나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혹은 사람.
청춘.
그래 청춘 같다.
삶과 감정의 굴곡 속에서도 하릴없이 드러나버리는 청춘의 푸르름.
시가 아직 내게 어려워
느끼기만 할 뿐인데,
느끼는 걸 계속하다 보면
앎에 이르게 되리라 믿으며 시를 읽는다.
아니,
그저 느끼는 게 좋아 시를 읽는다.
그러므로 나는 끝까지 이렇게 시를 읽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나는 스스로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시를 읽으면
내 사유의 깊이와 시간이 아쉽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여행이 고프다.
사유의 시간을 주는 길.
여행이 막힌 여행자의 핑계랄까.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내공을 쌓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기승전 여행.
못 말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