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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r 10. 2022

행복하게 산다는 것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박준

‘한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말이 ‘괜찮다’였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한테 전화해서 ‘괜찮다’는 말 세 번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진짜 괜찮은 게 뭔지 알았어요. 날씨가 더워도, 아플고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약속을 어겨도 다 괜찮아요. 전에는 괜찮아지고 싶어서 괜찮다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해요. 무엇을 해도 다 괜찮은 내가 됐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내가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낙천적으로 변했어요. 이해할 수 없는데 괜찮다고 위로하며 참는 것과,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 다르잖아요. 한국에서 난 오만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전에 싫어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는 초라한 존재라는 걸 알았어요. 여기 사람들 돕겠다고 왔지만, 오히려 캄보디아 사람들이 나를 돕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살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쫓긴다. 자신이 생각한 생활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삶을 불행한 것으로 치부한다. 삶이 힘겨울 때 캄보디아에 한번 가본다면, 전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에서 사는 게 어렵다 해도 그 힘겨운 삶마저 감사하게 될 것이다.

… 이들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캄보디아 사람들이 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다만 이기적이고 속 좁은 내 생각으로는, 무작정 주기만 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캄보디아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기 때문에 이들이 여기 사는 걸 행복해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아마도 캄보디아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삶에 대해 겸손해지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행복한 것은 한국에서의 치열한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다만 ‘자기’라는 테두리가 조금 더 넉넉하고, 그만큼 조금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삼십대의 후반,

젊지도 삶을 헤아릴 만큼 나이 먹지도 않은 때를 살아 여유가 없어서인가.

예전만큼 돕는 삶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변명에 불과할 테지.


아무튼 오래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나왔던 시절 즈음 내가 꿈꾸었던 삶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내 삶은 어떤 이유로든 치열하기에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사는 책 속 사람들과 나를 마냥 비교하며 부끄럽지만은 않다.


하지만 뭔가 찔리는 마음.

옳고 그름으로 다양한 삶을 나눌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쩐지 그렇다.



‘사람들은 대개 나의 감정, 나의 욕망, 나의 관계 위주의 삶을 산다.
세상은 ‘나’만 생각하며 살라고 부추긴다.
아무래도 나, 나의 욕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욕망 때문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나는 이 부분에서 눈이 멈춰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창밖에 시선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바로 세상의 그 말에 휘둘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게 좋은 이유가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 높아진, 혹은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 하고 돌아올 때의 행복감 때문이 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아마도 이걸 깨달은 것 같다.

내가 꽤 오랫동안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 그만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여행이 마냥 그리웠는데, 이유가 생겼다.

그런데 되려 조급증이 덜어진 느낌이다.

여유롭게, 길이 내게 줄 시간을 준비하자는 마음 덕분인 듯하다.


덧,

글을 읽는데 세상이 ‘나’만 생각하라고 부추겨도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드는 한 사람이 곧장 떠올랐다.


우리 남편.


전날 일 끝나고 온 남편이 아이와 창밖 야경을 보면서 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는 네가 좀비가 돼서 아빠를 물려고 하면 너한테 그냥 물릴 거야.’

 

요컨대,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던 것.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아이에게 그 말을 해준 남편은 분명,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생각하며 오늘치 일을 해냈던 것이리라.


사랑을 배우며 살 수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

어쩌면 지금 나는 봉사와 헌신의 마음을,

태도를 배우는 때를 사는 걸지도.


그리고 언젠가 꼭 스스로 물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게 흘러 들어온 사랑을 잘 흘러 보내며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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