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홍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한 시간 반쯤 지연되었다. 다행히 나는 공항에서 일하는 홍콩 친구 Jayi랑 만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느라 지루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잘 때웠다. 마지막에 아이의 극한 땡깡이 찾아오는 바람에 결혼하지 않은 Jayi가 꽤나 당황하게 됐지만. 친구는 입을 벌린 채 어정쩡하게 우리 옆에 서서 아이와 나의 대치 상황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You are a great mom!”
친구는 그간 둘이 어떻게 그 모든 여행을 다녔던 거냐고, 이 상황보다 더한 일이 있었을 것 아니냐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아는 나는 네 앞이라 큰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인내심 있는 엄마가 아니라고 변명했으나 그녀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Jayi 이모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홍콩의 습한 더위에 며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집으로 돌아갈 때쯤 되니 아이도 긴장이 풀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고요한 시간을 허락받은 나는 덕분에 자유시간을 얻었다. 아이가 비행 내내 깨어 있으면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또 험난 해질 테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입을 삐죽 내민 채 시작된 이 여행은 결국 모든 게 좋은 채로 끝났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홍콩에서 남편, 아이와의 추억까지 덧입혀지니 홍콩이 내게 더 특별해진 기분이다. 또한 남편과 함께라 더욱 편하게 익숙하지 않은 곳들도 가볼 수 있었다. 여행이 주는 익숙하고도 낯선 즐거움도 물론 좋았지만 이 모든 걸 좋게 만들어 준 것은 단연 남편과의 대화 덕분이었다. 그 덕에 여유를 찾았더니 내가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버려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육아를 잘 해내고 싶다는 내 과한 욕심이 때문에, 역으로 육아를 더 무겁게 느껴왔다는 것. 육아에 있어 누구보다 투명하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남편과 함께 였기에 가능했던 성찰이지 싶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남편도 나도 여러 가지 이유로 바쁠 것 같은데, 그것이 조급하고 예민한 태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 낳고 열심히 해온 연습 중 하나가 시간 분배이지 않나.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한 가지씩 해보자. 억지로 일상을 사랑하자고 다짐하지 않기를. 나의 일상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마음을 준 여행에 고맙다. 흥겹게 일상을 살다, 다시 길 위에 즐겁게 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