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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Nov 08. 2022

괜찮은 마음

<밝은 밤> / 최은영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마르며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있겠지.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삶에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그건 사치이기 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
어떻게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라고 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
엄마의 말대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오히려 그녀를  화나게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희자 아바이가 히로시마에서 죽었다면 내가 무얼 빌었을까 생각해보면 말이야... ... 고저 하루라도, 아니  시간이라도,  분이라도 희자 아바이를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안아보는 ,  기걸 원했을  같아. 돌아와 고작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다고, 마음만  아픈  아니냐고 말하는 동무들도 있었지. 그런데 삼천아 봐봐라,  시간,  순간에 비한다면   년은 참으로  시간 아니갔어. , 희자 아바이가  귀해.   기걸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두  이쪽이  좋다. 희자 아바이가 어떤 모습이어두  곁에 있잖아.


... 사는 것이 복수라고, 보란듯이  살면 된다고 말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길에서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되는 동안에.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능력보다도  많이 성취할  있었으니까.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나는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 남선의 모진 말들을 얼마든지 견딜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너무 상처받아서, 아파서 소리를 지른  죄가  수는 없어요."
"알아.  알고 있어. 그냥, 그럴 때가 있었다는 거야. 마음이 나에게 박하게 기울 때가 있었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바라는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없는 사람과,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와의 결혼으로 내가 지닌 문제와 내가 가진 가능성으로부터 동시에 도망치고자 했다. 나의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중 나를  아프게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
나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나.
나에게,  인생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동원해 기록할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없는 것처럼  사람의  안에도 측량할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기억해두고 싶어 접어둔 페이지를 펼쳐 다시 읽으면서도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최은영 작가의 글은 늘 이렇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처음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

감정과 생각이 너무 쉽게 읽혀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객관적 사실 하나,

나와 출생연도가 같다는 것에 괜히 의미를 부여했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그녀의 언어가 읽히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보인다.

상처, 랄까.


발췌해 둔 숱한 아픔의 고백들이

죄다 내 거 같았다.


지난가을 내내 붙들었던,

아니 어쩌면 지난 십수 년간 내가 붙들렸던 슬픔과 너무 같아서

한 문장 한 문장에 하릴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종내에는 말 그대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가 직시한 아픔이, 그 아픔 구석구석 파헤치며 맞닥뜨린 진실이

맞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작가의 말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이번에 나는 더한 동질감을 느꼈다.

글을 쓰는 지난 2년간 성인이 된 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의 말에서

나의 가장 힘들었던 몇 년이 떠올랐다.


한 달쯤 전에 만난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 마음들을 털어놓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친구가 건넨 말에 울음이 웃음으로 바뀌었던 게 생각난다.


"너 왜 그렇게 눈물을 잘 닦아?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그래."


지난했던 그 시간들 후 지금 내 상처가 다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을 잘 견뎌내는 방법쯤은 알게 된 듯한 마음.


어려웠으나

그리고 몹시 힘들었으나

괜찮은 마음에 이른 이 겨울의 시작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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