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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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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Dec 20. 2022

가장 머물고 싶었던 곳으로

아이와 나의 47번째 도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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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시국 이후로 3년 만에 드디어 아이와 비행기를 타게 됐다. 3년 전 아이가 1학년일 때 발칸을 여행한 게 마지막이었으니, 아이가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되었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나고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 자체도 그리웠지만 나는 여행중 아이의 성장기를 3년 치 놓친 게 가장 아쉬웠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행을 앞두고 정신없는 나의 일상은 그때와 꼭 같았다. 매번 갱신하는 남편의 '역대급 바쁜 시기' 때문에 한 달간 사람 손을 타지 않을 집안을 최대한 말끔히 정리해두느라, 나는 이번에도 여행 전 마음을 정리하는 일 따위는 공항 도착 이후로 미뤘다. 그마저도 짬이 나지 않아 비행기가 이륙을 한 후에야 여행일기를 펼쳐 든 나.  


 독일 여행 이후로 나는 징크스라는 단어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치 이 여행은 떠나면 안 된다는 듯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징크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떠나는 과정 역시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내내 나는 희한할 만큼 강렬하게 뉴욕에 가고 싶었다. 신혼여행이라는 행복한 추억이 있어 뉴욕은 내게 특별한 도시이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음악과 미술을 맘껏 누리고 느낄 수 있는 도시라는 이유가 컸다. 사실 같은 이유로 나는 작년 가을, 잠시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실컷 그림을 보고 싶다며 파리에 다녀왔던 사람.


 하지만 뉴욕 여행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돈이었다. 평소보다 두 배 넘게 비싼 비행기 값과 환율도 문제였지만 당장 집 때문에 나가는 이자가 천정부지로 솟으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다.


 사실 예전에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 뿐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으로 낼 소리까지 상상하면서 머리를 부여잡곤 했다. 예컨대 집 장만은 언제 하고, 네 남편은 어쩌고 등 현실적인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보는 판단의 말들.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소위 '못 말리는 사람'이 되어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도 마치 트라우마처럼 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그 소리들이 달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울적해진 마음에 어깨를 움츠리다가, 있지도 않은 상대를 향해 당신들이 뭔데, 와 같은 외침을 수없이 했던 것. 하지만 다행히 지금의 나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게 되었다. 되려 깡 같은 게 붙은 것 같다. 당신들 걱정대로 될지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와 같은 마음이 생겼달까. 더불어 내가 이런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여러 마음들이 같이 떠오르는 덕분이기도 하여, 나는 여행 전에 더 이상 나를 욕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억울하기보다 감사하고 뭉클한 마음을 더 자주 느꼈다.


 두 번째로 나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이번에도 엄마였다. 엄마의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면서, 나는 또 한 번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생각하며 펑펑 울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떠나기로 한 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참 얄궂게도, 내가 떠나기 직전에 엄마의 상황이 조금 나아져 엄마는 떠나는 나에게 용돈까지 부쳐주며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주었다. 지난가을부터 이 여름까지, 나는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날만큼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또 이 여행이 마치 이 과정의 마침표처럼, 그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한 문장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아니, 시작이라 믿고 싶었다.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뉴욕에 사는 남편의 사촌동생들이 와서 지내라 말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어른, 즉 남편의 고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부담이 없지 않았다. 또한 아이가 커서 든든해지기도 했지만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 속에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도 있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공항에 도착해 갈 때쯤 무렵 가슴이 가볍게, 두려움으로 떨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과 늘 예상하듯 금세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며 웃을 걸 안다. 5주라는 시간에 쌓일 이야기는 또한 참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나와 아이에게 쌓이리라는 것도.


 그러므로 겸손히, 그 시간들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이기를. 그리고 문득 다가올 이야기들을 즐거이 마주하자. 아무튼 우리의 여행이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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