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Seattle to Incheon
검색대 통과할 때 유모차에서 내리라 하면 울고, 비행기 기다리면서 언제 타냐고 울고, 비행기 타러 들어갈 때 유모차 접으라고 하면 울고, 자리에 앉아 벨트 채우려고 하면 안 한다면서 벨트 사이로 빠져나오던 아이.
네 살 아이는 이제 그 모든 과정에 울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 심지어 알아서 벨트를 채우고 잘 채운 자신이 뿌듯한 듯 벨트를 톡톡 치기까지 한다. 어쩌다 한 번쯤은 비행기 언제 뜨냐고 물어보지만 창밖 비행장에 서있거나 달리는 비행기를 보며 스스로 납득한 듯, 그저 반갑게 ‘비행기 친구들이 있어요’ 한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여행의 기억들과 함께 내 가슴에 오롯이 박히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할 때 나는 왠지 모르게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미국 서부 여행을 마치고 시애틀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 나는 이 여행 중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이의 성장 기록을 추가했다.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해본 것. 짐도 문제였지만 워낙 공항에 사람이 많아 자리를 한 번 뜨면 앉을자리를 찾기 힘들 것 같기도 했고, 아이 걸음으로 10초면 가는 거리이니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한 거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아이가 절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놓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보내 놓고 보이지 않는 아이를 사람들 사이로 찾으며 ‘지금쯤이면 손을 씻고 있겠지’라는 등 동선을 상상하고, 심지어 이 작은 일에 ‘하나님 아이가 잘 다녀오게 지켜주세요’라고 기도까지 하던 나. 다행히 아이는 볼 일을 잘 마치고 나를 향해 달려왔는데, 아이 역시 스스로도 큰 일을 해냈다는 걸 아는 양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으로 뛰어 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금세 자기가 보던 만화 속 화면으로 눈을 돌린 아이는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엄청 빨리 뛰어 왔어요!’라고 말한다. 이 별 거 아닌 일에 엄마 마음은 또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는 ‘장하다 우리 아들, 멋지게 잘 크고 있어’라 말하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이가 자라면 쿨하게 보내주는 엄마가 되겠노라 말해 온 나는, 막상 아이 혼자 멀리 떠나는 날이 오면 가슴이 떨릴 것 같다는 생각을 이 날 처음 해봤다. 이 작은 시도 한 번에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여전히 얇은 아이의 팔목에 눈이 갔다. 핏덩이던 아이 모습을 생각하면 많이 컸지만 아직은 가녀린 아이의 몸. 순간 이 아이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어딘가로 훌쩍 떠나도 될 만큼 클 때까지 아이를 잘 품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밭이 되어 주리라. 아이의 엄마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결코 해볼 수 없는 이런 다짐을 하면서 나는 엄마로서의 내 성장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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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를 빙빙 돌다 드디어 떠오르기 위해 엔진 소리를 키우는 비행기 안. 시애틀에서 본 날들 중 가장 안개가 자욱한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데 나는 오랜만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벅찬 기분에 눈물이 차올랐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돌아가서 지낼 내 일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는 내 여행과 삶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무너져 내렸던 터였다. 그 상황을 떠올려보니 내가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상황을 떠안고 여전히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 여정의 한 복판에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 같은 게 인 것 같았다. 그리고 빠르게 안개를 제치고 구름으로 빈틈없이 찬 하늘의 경계 위로 오른 비행기 안에서 너무나도 맑은 창밖을 보며, 헛된 기대일지라도 안갯속 같은 내 삶에 이렇듯 맑은 풍경을 보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차올랐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행 중 어딘가에서 경계를 뚫고 올라갈만한 힘이 내게 심기어졌기를, 부디 그 힘이 비행기 착륙과 함께 힘을 잃지 않기를. 그리하여 성장 그다음의 시간을 잘 쌓아 올리는 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