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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Feb 28. 2023

나는 '누구'로서 글을 쓰고 싶은가

<저만치 혼자서> / 김훈

...바다의 시간은 상륙하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이었고, 신생의 파도들이 다가오는 시간 속으로 출렁거렸다. 

-직선은 생각이 뻗어간 흔적이고 한일자는 빈 것 위로 밀고 나가는 사람의 몸입니다.
그래서 빈 종이 위에 최초의 한 획을 그을 때, 무인지경의 화폭은 사람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신부는 말했다.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이 작동되고 있었다.


...나는 글을 써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로 했다. 나는 오영환 소방사가 전한 느낌을 등대처럼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지어내서 그 등대에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이 세 마디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테마다.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 연장을 쥐는 손, 악기를 쥐는 손, 무기를 쥐는 손, 고운 손, 부르튼 손,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손잡이에 남아 있는 손들의 자취와 표정에 대해서 나는 쓰고 싶다. 나의 '손'은 오영환 소방사의 '손'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손'이라는 제목은 내 마음에 든다.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소설집 맨 뒤, <군말>이라는 제목으로 삽입된 작가의 해설문에 적힌 문장이다.


여행을 하고, 여행 중 배운 것들을 끼적이는 치로서 십수 년. 

여전히 내 속에 것들을 채 끝내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이 꽤 컸다. 

 

'밖'과 이웃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구조와 정의, 또는 부당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은 나부터 제대로 서자는 마음이 큰 탓에


기억되어야 하나 잊히고 마는 수많은 타자들에 '이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작가의 자격이 

나는 감히 따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보였다. 

그만큼 그들을 위해 가슴 아파하고 곱씹어 냈으므로 가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 게다.


내가 스스로를 작가라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고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아닐까 싶은 요즘.


호기롭게 뱉어낼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나와 비할 수 없이 많아 보이는 그의 시간을

나도 가져야만 하리라.


인도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의 이야기가 담뿍 담긴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며 반가워했던 처음보다는 

책을 닫을 때 내 마음이 좀 무거워졌지만

필요한 무게를 담은 듯하여 고마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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