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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16. 2023

이탈리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 하> / 시오노 나나미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들에게 기원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 그리고 신들도 인간에게 베풀어주고 싶어 할 모든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정비하고 그 지속까지도 보증해 주었다.
 그것은 정직하게 일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고, 그 인간의 노력을 지원해 주는 신들에 대한 신앙심이며, 자기가 가진 재산을 아무한테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안심감이고, 각자의 신변 안전이었다.>

-발레리우스 파테르 쿨루스, <역사>


... 인간이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의 현실화를 통치자에게 기대할 수 없게 되면, 남은 방법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다른 신과의 동거를 수용했던 다신교의 신들이 아니라, 다른 신과의 동거를 단호히 거부하는 일신교의 신에게.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맞선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일신교끼리였다.

 로마제국은 광역경제권이었다. 중세는 그것이 붕괴된 뒤에 찾아온 시대니까, 협역경제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과 중세의 차이는 물산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대와 유통이 멈춰버린 시대의 차이이기도 했다.


 같은 일신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신앙의 대상이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도의 눈으로 보면 기독교도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깊게 하는 길에 잘못된 길로 들어가 버린 사람들이고, 따라서 불신앙의 무리이며 인간이 아니라 개다. 이런 이슬람교도들 사이를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로마 교황의 모습은 기독교도가 '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최고의 표본이었을 것이다.


...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역량'을 갖추고 있을 것. '운'이 좋을 것.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일 것.


 동시대의 역사가 구이차르디니도 말했듯이, 1494년에 프랑스 왕이 이탈리아를 침공함으로써 이 시대도 끝났다. 도시국가의 시대는 가고 영토국가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 세계를 생각하면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쟁의 열기를 식히는 것은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돈의 흐름이 막혔을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멘토로 따르던 분의 서재에서 책을 빌려 읽던 20대 초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읽고 빠지게 된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읽어온 게 세어보니 18년쯤. 그리 오랜 시간 읽어올 수 있었던 건 그녀의 탁월함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나의 유난스러운 여행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마제국이라는 넓은 세계를 다룬 역사를 읽으면서 내겐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최소 6개월쯤 천천히, 머릿속으로 그렸던 땅들 곳곳을 걸어보리라는. 그래서 지금껏 여러 번 유럽 여행을 다녀왔지만 나는 부러 이탈리아만큼은 제외했다. 과거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를 잠깐 보고 오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내가 생각이 바뀌어 올해 가을 이탈리아 여행을 2주쯤 '짧게' 계획했다. 이유는 현재 12살인 아이가 나와 긴 여행을 다녀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이탈리아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면, '최소 6개월'이라는 기간보다 특별한 이유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 거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완결이 지나고 한참 동안 나는 그 이후의 역사를 다룬 이 시리즈를 읽지 못했다. 그 시대가 주는 어두운 분위기에 빠져들기엔 내 일상을 살아내는 게 버거웠던 것도 같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지만 이해도 잘 되지 않고 잘 외워지지도 않던 게 국사에서는 근세, 서양사에서는 중세 시대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술과 문화보다 침략과 침탈, 욕망이 앞선 그 시대의 이야기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내 속에도 분명히 있을 인간의 근본적 악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아무튼 그 현실이 어떤지 더욱 세세하게 알게 된 지금은 그 시대가 몹시 아프고 슬프게 읽히지만,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경계할 수 있기도 하니 좋다.


 치기 어린 20대 초반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책을 다 읽어간다고 해서 나는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의 역사를 다 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저 흐름 정도만 알 수 있게 됐을 뿐. 복잡한 얼개를 가진 천 년 역사 속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이다. 이전에 읽었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그녀의 몇몇 책들과 더불어 중세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결국 문제가 심플하게 보인다. 나만 옳다는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 혹은 사람들의 욕망에 권력이 주어져 무리를 움직일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늘 그렇듯 최대한 세계의 중립에 서기 위해 부러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멀찍이 떨어져, 수십 년간 역사 가까이에서 사람과 구조와 세계를 탐구하는 그녀의 삶이 존경스럽다. 그 덕에 사람과 역사를 읽는 힘을 조금이라도 얻게 된 나는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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