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루리
언제나 그랬다. 노든은 옛날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노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이 책은 처음으로 내게 생긴 '동네 친구'인 언니가 선물해 주어 읽게 됐다.
언니에게는 어린 왕자보다도 좋았다는 말에
책을 읽기도 전부터 무작정 이 책이 좋았다.
그 좋은 걸 내게 나눠주고 싶어 한 마음부터가 너무 감동이어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언니의 그 감동 어린 표정과 말들을 이해했다.
나 역시 같은 표정으로 가슴에 얹어진 묵진한 걸 소화해 내느라 읽고 있던 자리를 뜨지 못했으므로.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간결하고 수식어도 적은데 독자의 마음을 움켜쥘 수 있는 소설의 힘이, 글쓴이의 힘이 그 먹먹한 와중에도 부러웠다.
'우리'라는 말에 담긴 의미에 어른만큼 복잡한 걸 떠올리지 않을 아이들에게는 아마도
어른의 그것보다는 단순한 감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모를 아이들에게는
코뿔소가 되기를 바라는 펭귄의 마음이 도통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이 소설은
모험이라는 단어에 설레거나 두렵다는 가슴의 파동쯤을 상상할 아이들에게
모험을 거친 어른이 얼마나 무거운 마음으로 삶을 감내하는지 보여주는 참 적나라한 소설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걸 차치하고
아이들에게는 '우리'로 살아갈 이유와 지혜를 글로 그려주므로,
'우리'가 버겁기도 한 어른들에게는 놓쳤던 따스함을 떠오르게 해 주므로 고마운 소설이다.
묵직한 게 좀 사그라글자 부모로서 나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의 첫 '우리'인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어떤 정의를 내리게 할까?
부모가 아니더라도, 우리 중 하나로 사는 모두에게 우리 속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아동 문학 세션에만 있기엔 퍽 아깝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