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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Jun 12. 2019

끝까지 가볼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박준

탄자니아 커피는 견고한 커피다.
기름이 잘잘 흐를 만큼 프렌치 로스트 레벨까지 볶아도 맛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다. 웬걸, 어림도 없다.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중에서

“언제 찍을 거예요?”
참다못한 월터가 묻자 사진가는 이렇게 말했다. 
“안 찍을 거야.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 ... 사라졌어. 갔어 ... ...”

저기, 그리고 여기 머물다 사라지는 것. 어쩌면 그의 여행이, 우리 인생이 그렇다. 결국 그 역시 그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기 위해 아이슬란드 여정을 이어간다.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을 위해.

<지구 속으로 떠난 여행> 중에서




친숙함의 정도와 상관없이, 

아는 이의 글을 읽는 일은 묘한 기분을 준다.


내가 모르는 어떤 면을 발견한 듯해 낯설어지거나, 

내가 아는 그를 텍스트 속에서 느끼며 괜스레 친근함을 높인다. 


작가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한 시간보다 책으로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아서 

작가님의 글과 더 친해진 기분.


생각해보면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 

작가님과 ‘지인’이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처음 홀로 배낭을 지고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을 정하게 해 준 책이 작가님의 책이었으니, 

내가 작가로 불리건 말건 일단 한걸음 나아갔다는 기분은 드는 게다.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십 대 후반쯤 희미하게나마 작가가 되고 싶다 했으니 나는 십 년쯤 꿈속에 있다. 


여행을 함께한 친구는 자신감이 좀체 생기지 않고 조금 생겼다 치면 곧장 곤두박질친다는 내 말에, 

어쩌면 그것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른다고 했다.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니 

누군가의 인정과 상관없이 내 길을 가는 싸움을 하는 일은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여정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번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게 아니라

끝없이 밀고 나가는 게 내 성정이라 

평안할 만하면 눈치 볼 일을 감행하는 내가 

이쯤 되니 스스로도 신기하다. 


아무튼 여행 중에 읽는 여행기,

덕분에 더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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