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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7. 2019

부러운 사람

<오직 두 사람> / 김영하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 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소설가는 말이야. 현실적이어야 해.
...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모든 희망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들은 하나의 행동,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에 동의했고, 최선을 다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그들이 공유하게 된 것,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문학에 어떤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언어의 그물로 엮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문학은 혼란으로 가득한 불가역적인 우리 인생에 어떤 반환의 좌표 같은 것을 제공해줍니다. 문학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독자 앞에 불려 오고, 지금 쓰인 어떤 글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예감합니다.
...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작가의 말 중에서’






개인적으로 호불호와 상관없이

웬 힘에 이끌려 읽게 만드는 작가가 나에게는 김영하다.


스물한두 살, 나는 그의 글이 건네는 의미가 전혀 이해되지 않거나

내용 자체가 비호감 그 자체인 게 많음에도

묘하게 당기는 그 ‘힘’에 끌려 하릴없이 읽었다.

게다가 읽는 게 수월했다.

이전에도 그의 책을 읽고 몇 번이나 말한 바,

그게 이 작가의 힘이자 질투 나는 그의 재능이다.

전에 읽은 소설집에서도 봤던 <옥수수와 나>를 다시 읽으니

주인공인 ‘작가’가 김 작가 스스로 설명했듯 정말이지 지질하다.

그런데 그가 작가의 말에 몇 번 말했던

재능 있는(이 형용사는 내가 붙인 것)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게 지금 보니 재밌다.


지질한 작가로 그린 것은 겸손의 표현일까.

그땐 지질하다기보다 더러운 치정으로만 읽혔는데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는 걸 보니

글을 읽는 내 눈에 더해진 연륜을 느낀다.

최근 몇몇 TV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그의 지적이고 젠틀한 분위기,

은근하나 힘 있게 표현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을 보면서

솔직히 나는 작가의 본심이 헷갈렸다.

독자로서 쉽게 저지르는 오류, 즉 작가 자신과 화자를 겹쳐 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세월과 함께 안개가 걷히듯 그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글에서나 얼굴에서나

그야말로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성석제라는 작가를 십수 년간 읽어오면서 느낀 것과 다르게

나는 김영하라는 작가의 글 깊숙한 곳에서 어렵게, 그러나 진하게 사람 냄새를 맡는다.


내 생각에 그는 글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야기들을 통해

뭇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 아직 적나라한 세상을 다 알지 못했던 스무 살의 나는

그것이 괴이하거나 잔인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 뉴스에 나오는 꺼리들 너머 더 절망적인 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나는

그의 적나라한 이야기에 단순한 호불호의 감정 이상을 느낀다.


연륜이나 삶에 대한 통찰력이 그만큼 미치지 못한 이로서의

호기심 또는 고마움과 긍정을 말이다.

다시 한번 그리고 여전히, 그의 필력이 부럽다.
더불어 그 필력에 담아낸 마음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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