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 놀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가 Sep 20. 2019

England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내 생각에 오만은... ... 인간에게 매우 흔한 약점이야.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에 따르면 오만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성향이야. 인간은 본성적으로 오만에 빠지기 쉽게 되어 있어. 그리고 실제건 상상이건 자신의 특성에 대해 나름대로 자만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해. 허영과 오만은 흔히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거야. 허영이 없는 사람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기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거야.”

“내 판단력을 너무 과신했어. 내 지성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관대하고 솔직한 언니의 성품을 은근히 비웃고, 근거 없이 남을 의심하는 걸로 내 허영심을 만족시켰던 거야. 이제야 깨달았어.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더 이상 우매할 수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내 어리석음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허영심 때문이었어. 두 남자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난 너무 분별력이 없었어. 한 사람이 내게 호감을 표시하는 데 기분이 우쭐했고, 다른 한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두 사람의 일에 관해서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었어. 이 순간까지도 나는 자신을 너무 몰랐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다아시 씨를 특별한 근거도 없이 극단적으로 싫어했던 것 같아. 그걸로 스스로 비범한 척하고 싶었던 거겠지. 어떤 사람을 지독히 싫어하게 되면 천재성이 발휘되고 위트가 샘솟거든. 올바른 말은 한마디도 안 하면서 누군가를 계속 비난할 수는 있어. 하지만 어떤 사람을 계속 비웃다 보면 가끔씩 재치 넘치는 말이 얻어걸리기도 하는 법이거든.”

“그러나 견고할 것 같았던 두 대립적 세계는 충돌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그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으로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오만함’에서 벗어나게 되고,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에 대한 평가가 자신의 ‘편견’으로 인한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은 두 세계가 각자의 모순을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유연해졌음을 의미한다.

...
이것은 단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관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불협화음을 이루던 전통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관이 ‘화해’를 이뤄 ‘공존’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

- 작품 해설 중에서








어릴 때 사촌언니 집 책장에는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더께가 쌓인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할 일이 없어서 하릴없이 세로로 써진 책 제목들을 읽다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 몇 문장만 읽고는 약간의 더께만 덜어내고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나는 이십 대 초반, 키이라 나이틀리라는 예쁜 배우와 영국 교외 풍경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에 단번에 빠져들었고, 지금까지 세 번 그 영화를 봤다.


그 후로 또 십오 년쯤 지나 나는 드디어, 이번에는 고모 댁 서재에 꽂힌 책을 어릴 때와 달리 반갑게 들어 올렸고 거의 단숨에 읽어 내렸다. 읽는 내내 얼마나 설레던지! 실은 3년 전 영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목적지를 막연히 런던과 영국 교외 어딘가로 정한 나는, 영국인 친구에게 추천해줄 만한 '시골'을 물었고 친구의 고향이 <오만과 편견> 영화 속 배경이 된 더비셔라는 말에 정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그곳을 여행했다. 하여 책을 읽는 내내 눈으로 글자만 읽을 뿐 아니라 마치 오감이 다 발동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를 볼 때와 다르게 책을 통해 더욱 자세히 그 시대가 읽히자, 나는 새삼 작가의 통찰력과 당당함에 감탄했다. 130여 년 전 전통과 근대의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 있던 영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자기 이름을 드러낼 수 없어 가명을 쓸 수밖에 없던 시대에 작가로서 적어 내린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특히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편견에 대해,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쌓인 탓에 여성들 자신도 모르게 견디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요즘, 내게 또 한 번 여러 의미로 울림을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하라, 당신도 인간이라는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