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일기]
2023.04.11. 화요일. 내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어김없이 초점이 반쯤 나간 직장인들을 빽빽이 실어 나르는 만원 버스에 올랐다. 제법 온도가 오른 날씨 탓인지 유독 부대끼는 회사행이었다. '내가 꼭 차를 사서 출퇴근을 하고야 만다'고 다짐하기만 벌써 2년이 훌쩍이다. 형편에 비해 값비싼 집 임대료, 이따금씩 회사 스트레스를 거침없는 씀씀이로 푸는 패턴,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나누길 즐겨하는 습관, 많은 돈을 내더라도 경험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같은 것들이 과감한 결단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들어찬 버스 안에서 불쾌감보다는 저릿한 마음을 강하게 느꼈다. 망원역 부근에서 80대 정도로 추정되는 할아버지 한 분께서 급히 갈 곳이 있으셨는지 비좁은 틈바구니 안으로 겨우 파고드셨다. 그날은 하필 폭군 같은 운전 실력으로 아침 군단의 원망을 사곤 하는 앳된 폭주족 기사님이 운전대를 잡던 날이었고. 할아버지께서 답답한 인파 속에서 유독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끼이익-. 버스가 관성의 법칙에 몸을 맡기고 제멋대로 흔들릴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주변 청년들을 향해 고개를 푸욱 숙인 채 연신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외치셨다. 그러고는 애써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날씨 얘기를 꺼내셨다. 다정한 스몰 토크를 시도하신 거다. 이에 대한 화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묵만이 가득 깔린 버스 안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미약한 목소리. 주변에 있던 젊은이 3명은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할아버지를 노려보다가, 심지어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한 욕설을 할아버지의 귓가에 투하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구간에서는 잔뜩 화가 난 몸짓으로 그분을 밀치기까지. 힘없는 노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다음 역에서 빡빡한 버스의 앞문이 겨우 열리며 할아버지는 결국 중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이 성가셨는지 이미 교통 카드를 찍고 버스에 몸을 실어버린 할아버지께 기사님은 버럭 고함을 내지르고는 버스에서 내리시라고 강요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버스를 놓치면 가야 할 곳에 늦어버리는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냐며 멋쩍은 양해를 구하셨지만, 기사님은 차디찬 묵묵부답으로 할아버지의 존재를 깔끔히 지워버렸다. 마지못해 할아버지께서 부당히 하차하는 길에도 버스 안의 모두는 따끔한 눈초리로 그분을 일제히 노려봤다. 이 상황이 너무나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게 불과 한 정거장을 지나는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소니 헤드폰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다. 나는 복잡스런 만원 버스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받겠다고 매일 헤드폰과 한 몸이 된 채 출퇴근을 반복했었고. 나만의 방패막이였던 노이즈 캔슬링 너머로 불편한 기색, 짜증스런 어투, 공격적인 태도, 적막의 분위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멀리서 세 번쯤 용기의 손길을 내밀기를 시도하다 이내 포기해 버렸다. 애처로운 눈빛과 닿지 않는 마음으로만 말이다. 고민만 거듭하다 상황이 종료되어버린 것. 회사에 내려 사옥의 11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강한 내가 약한 분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온종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는 사회가 됐을까. 어쩌다 한국에서는 선의와 인사, 그 자그마한 몸짓들이 큰 마음을 먹어야만 실행 가능한 행위로 전락해버린 걸까. 동네에 비디오 가게가 자리하고 북적이던 2002년 무렵으로 돌아가볼까. 모르는 아주머니, 모르는 할아버지, 모르는 동네 언니... 모두가 스스럼없이 가게로 모여들어 정겨운 말씨들을 주고받던 사회. 그런 모습들은 고작 10년이라는 세월 속에 빠르게 자취를 감췄고, 지금의 한국은 그저 칼로 재단한 듯 반듯한 룰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만원 버스에서 건강한 두 다리로 강건히 지켜 서서 주변인에게 불가항력적인 일말의 터치도 해서는 안 되는 건지, 처음 만난 사람과는 반가운 인사도 나누면 안 되는 건지, 밝은 미소로 함께 하는 출근길을 환대해서는 안 되는 건지...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본인들이 정해놓은 엄격한 기준에 들어맞지 않으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별종 취급하는 한국 사회가 불현듯 미워지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온전한 천사들의 나라는 없겠다만, 적어도 네이버후드가 좋았던 오리건에서 지내던 시절에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이유는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색깔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기 마련이니까. 묻지 않았는데도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양해를 구하고, 길에서 마주한 모르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어울려 살아가던 시절이 요즘 따라 유독 그립다. 그리고 오늘은 이 사회에 점차 물들어 자그마한 용기조차 내지 못한 내가 가장 원망스럽다.
2년 전, 어느 화요일에 적었던 일기다. 우리 사회에 대한 투덜거림이 잔뜩 적혀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만 와르르 쏟아내고, 늘어놓으며 지냈다. 미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은 이럴 때 이렇게 인사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길 가다 부딪히면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뒷사람이 들어올 때 미소와 함께 문을 열어주며 스몰 토크를 건네기도 하는데. 버스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정겨운 인사를 주고받고, 심지어는 서로를 알아가는 짧은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일전에 얼마만큼 살아보았던 미국 생활과 틈날 때마다 모아두었던 돈으로 떠났던 세계 여행을 빌미로 삼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을 무한정 험담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며칠 전 푹푹 찌는 폭염을 이겨내고 약속 장소로 향하던 참에 탔던 동네 버스 안에서 나의 고착되어버린 관념을 단숨에 깨뜨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안 녕 하 세 요 ~ ^______^"
"어... 안녕하세요.....! ^_^;;;"
밝은 미소, 너털웃음과 함께 에너지 넘치는 인사를 건네는 버스 기사님을 만난 것. 버스에 오르는 승객이 인사를 무시하든, 무미건조한 인사로 응답하든 그 반응 따위에 딱히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오르는 사람마다 홀로 꿋꿋이 환대로 반기고 계셨다. 갑자기 그 인사 하나에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기운찬 희망의 에너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더위로 지친 마음이 한순간에 누그러지는 듯한 기분. 그러고는 그 기사님이 엄청난 히어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후광이 비쳤달까. 진짜 히어로는 절망이 가득한 현실 안에서 묵묵히 밝음을 지키며 그 기운을 나누는 사람이구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건네는 우렁찬 인사법을 목도하고는 한동안 충격에 잠겼다. 왠지 그분의 또 다른 직업은 '한국의 인사 전도사' 같았달까. 그래.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용자가 되어 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기사님은 아실까? 그 작은 인사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기도 한다는 것을.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다음에 만나 뵈면 꼭 헤드폰 벗고 제가 말벗이 되어드릴게요.'
이제부터 내 꿈은 인사 서포터즈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밝게 인사해야지. 그게 혹여나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내더라도 개의치 않고. 우리가 함께 하며 더 환해지길 바라는 염원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힘껏 두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