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가끔은 누군가가 스치듯 베푼 작은 선의 하나가 하루 온종일을 살아낼 크나큰 힘이 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이상하리만큼 잔상에 진하게 남았던 상냥함은 그다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우울증이 깊어 물속에 침잠했던 나날 중에 받았던 부둥부둥 온정을 예로 들어볼까. 잿빛으로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 자꾸만 고꾸라지던 나는, 여기저기 도피처를 찾다가 결국 수영을 택했다. 그렇게 물속에서나마 고통을 잊어보고자 야심 차게 등록했던 수영 강습에서 불현듯 스며든 위로의 손길에 한동안 마음을 누이곤 했었고. 수영장 탈의실에서 매일 꼭두새벽 어머니들께서 한 마디씩 건네주시던 말씨가 당시 내게는 너무나도 큰 숨통 같았다. 마치 휴가철을 맞아 편한 차림으로 고향에 돌아와 지내는 듯 푸근한 기분이 들었달까.
“오늘도 왔네. 젊은 친구가 참 기특해.”
“아까 보니 수영 실력이 많이 늘었던데? 이제 중급반 가도 되겄어!”
그저 일상적인 격려였을 뿐인데, 그 말들이 왜 이리 내게는 다정하게 와닿았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버거웠던 나를 연명케 했다는 걸 그분들은 알까. 별거 아닌 습관적 호의였을지라도 내게는 하루의 부표 같은 것이었음을. 그렇게 나는 매일 아침마다 그분들의 온기를 받아 들고는 목 끝에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묵직이 삼켰다. 지나가는 수강생 1을 마치 그분들의 딸이라도 대하듯 귀여이 대해주심에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7개월에 걸친 병아리 초급반 수영 강습이 끝나고, 나는 절대 돌려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예전의 생기를 되찾았다. 동네 수영장 어머님들의 시그니처 응원법을 등에 업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어깨를 한껏 띄운 채 출근을 했으니. 수영장에서 무거운 몸을 띄워보겠다고 짜디짠 물을 많이도 삼켰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그곳을 나설 때면, 알 수 없는 마법의 물약을 들이켠 듯 기운이 솟았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여가다 결국 나를 살려낸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건네는 정겨운 마음들이 똘똘 뭉쳐 모르는 새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세상에 그런 구명조끼와도 같은 말들이 아주 많이 늘어나서 침잠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의 하루도 마구마구 건져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들은 강력한 도움닫기가 되어 우리가 또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니까.
빛과 그림자가 이리저리 뒤섞인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용한 부력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밝은 볕을 향해 두둥실두둥실 떠오르기를.
예전에는 어찌 새벽 5시마다 수영장에 출근을 했나 모르겠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과거의 제 자신이 참 대단해 보이네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해가 떠있는 순간 동안은 온전히 세상과 함께인 것이 얼마나 삶에 크나큰 활기를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을 반추하며 다시금 그리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