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성공은 백수의 특권인가요?

퇴사 후, 체지방 7kg을 감량했다.

by 편린

"떡볶이피자햄버거치킨빵떡 그런 거 안 먹고 어떻게 살아?"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온갖 종류의 혈당 스파이크에 몸을 담갔다. 다른 건 몰라도 혈당이 이리저리 날뛰게 돕는 일은 누구보다 잘하는 것 같았다. 견고하게 짜인 매뉴얼대로 기계처럼 움직이고, 이렇다 할 개인적인 성과는 가져갈 수 없는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 받은 압력을 퇴근 후 매번 폭식이라는 악습으로 풀었다. 쉬지 않고 행하는 루틴 같은 음주는 부지기수였고, 매 끼니마다 2~3인분의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는 건 내 정체성과도 같았다. 원체 운동을 즐겨했으니 겉보기에는 그다지 살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식곤증, 만성 피로, 염증 질환, 위험 수준의 내장 지방 레벨을 얻어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여러 차례나 체중 감량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원상 복구되곤 했다. 뭐든 마음만 먹었다 하면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상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건 다 해내면서 고작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다니. 하지만 질긴 자책 끝에, 20대 후반에 접어든 사람이 살을 빼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게 되었고, 운동만으로는 절대 체중을 감량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특히나 '날씬한데, 왜 살을 빼려고 해?'라는 주위의 말들이 나를 계속해서 그 수준에 안주케 했다. 사람은 늘 적당한 정도에 머무르려는 습성이 있어서, 애매한 선상에 놓이게 되면 끝도 없이 그 주위를 맴돌곤 한다. 극단적 충격을 줄 만한 터닝 포인트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온 자리에서 부유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들이 밀리고 밀려 너무 오랫동안 내 안에서 고여가는 에너지로 자리 잡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어떤 일을 지루하게 끌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있던 열정들이 사위어질 수도 있으니. 때마침 퇴사를 하고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30대가 되기 전 꼭 이루고 싶었던 체중 감량 미션 보드에 눈길이 갔다. 자극 동인을 찾기 위해 20대 초반의 사진들을 뒤졌다. 그때의 난 아주 가벼워 보였다. 물론 세상에 찌들지 않은 푸릇한 대학생이었으니, 인생의 태도에 있어서도 한결 가벼웠겠지만. 표정뿐 아니라 걸음걸이와 행동 전체가 홀가분해 보였달까. 이번에는 정말 그때 못지않게 가벼운 몸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단순한 외모 강박에서 기인한 다이어트 결심은 절대 아니었다. 인위적인 자세를 취한 바디 프로필 같은 걸 찍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도 딱히 없었고, 그저 나를 좀 더 사랑하기 위해 내 몸을 바꿔보고 싶었다. 요즘 유행하는 혈당 조절법, 자연식 위주의 저속 노화 식단, 과학적인 운동 루틴 등 다양한 방법들로 내 몸을 깨우기 시작했다. 간헐적 단식을 즐기고, 공복에 유기농 콜드 프레스 압착 올리브유 한 스푼을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좋은 음식들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설탕과 정제 탄수화물을 끊고, 고구마와 현미 귀리 곤약밥으로 대체했다. 식사 순서는 야채부터 왕창 먹고, 그다음으로 단백질, 그다음으로 탄수화물은 조금만 섭취했다. 호르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이 당기는 날에는 75% 카카오 초콜릿을 조금씩 잘라먹곤 했다. 잠을 많이 자고, 강박적인 운동을 유연한 운동으로 바꾸어 나갔다. 과도한 페이스의 러닝보다는 나에게 맞는 심박수를 유지하는 저강도 유산소 운동을 했고, 근력 운동 역시 저중량으로 내 몸에 맞게 꾸렸다. 그렇게 찬찬히 3개월을 지내니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체중계가 무려 7kg이나 아래로 떨어진 가벼운 수치를 보여줬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독하게 이뤄낸 체중 감량 덕에 내 의지력을 다시금 확인받았다. 가장 어려운 걸 해냈으니,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은 입 터짐이 거의 없다.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나니 몸도 정상화되어 나쁜 음식들이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어쩌면 회사를 나오고 나만의 길을 가게 되면서 나를 잠식했던 나쁜 기운들로부터 한꺼번에 해방된 게 아닐까. 아무래도 다이어트의 성공은 여유로운 백수의 특권인가 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진짜로 '떡볶이피자햄버거치킨빵떡'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종종 먹고 싶은 것들을 즐겨도 다시 살이 오르지는 않는다. 감량기를 지나 2개월이 넘는 유지기를 지나고 있으니.


"그래. 조금은 덜어내며 살자. 몸이 부풀고 부풀어 터져버릴 때까지 밀어 넣는 삶 말고."


예전에는 고강도 운동을 즐겨 했었는데, 요즘에는 저강도 유산소가 그렇게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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