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의 일탈

퇴사 후, 평일에는 종종 피크닉을 즐긴다.

by 편린

선호하는 날씨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을 차분하다 좋아라 하고, 어떤 이는 볕이 너무 쨍하지 않은 날을 시원하다 좋아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파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비비드 하늘빛 아래서 이글거리는 볕을 즐기길 좋아라 하니까. 나의 경우에는 화창한 날을 가장 선호한다. 태생부터 비타민 D 합성이 어려운 유전자가 있다던데, 그게 나인가.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하면 우울감에 빠질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스위스,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제주와 같은 곳에 머무를 때 유난한 들뜸을 느끼곤 한다. 왠지 속절없이 뜨겁고 선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본체 자유도가 높은 성격이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회사를 다닐 적에는 햇살이 따사로운 평일 대낮에 이단아처럼 하던 일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자연 속으로 튕겨나가는 상상을 즐겨했다. 아니 사실은 실행도 꽤나 많이 했다. 다행히도 격주마다 주 4일제를 운영하고, 장기 해외여행이나 연차 사용 등에 제한이 없는 회사를 다녀서 나의 이 반항적 기질을 잘 다독일 수 있었다. 일을 하다가 즉흥적으로 오후 3시에 연차를 쓰고 수영을 하러 가거나, 당일치기로 계획 없이 제주도로 떠나버린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퇴사까지 했으니, 몇 달간은 평일의 한낮을 그 누구보다 충분히 즐겨보고 싶었다.


퇴사 후 평일에는 종종 오후에 날이 좋으면 돗자리와 책 한 권을 등 뒤에 매달고 히피족처럼 선유도 공원으로 무작정 나아가 드러누웠다. 잔디 위에 가만히 누워 고요한 산들거림을 느끼는 시간 속에서 진정으로 생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인적이 드문 틈을 타 소풍을 즐기니 더할 나위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닐 적에는 늘 자연을 갈망하면서도 그곳에 쉬이 닿지 못하는 현실에 때때로 통탄하곤 했었는데. 그저 흙과 나무, 물만 있다면, 이리 아무 생각 없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다는 간편하고도 낭만적인 일상에 점차 적응해 가면서 나는 점차 더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쇼츠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유유히 흐르는 잔물결 안에서 피부에 닿는 찬기를 느끼고 싶고, 도파민을 위해 짜인 각본에 온종일을 담그기보단 그저 흩날리는 나뭇결에 내 시선을 오롯이 맡기고 싶다.


한평생 나부끼며 살아가고 싶다. 균형을 잃기 시작해 언젠가 나를 전부 다 잃고 나서 허무에 허덕이는 최후를 맞이하는 그런 삶 말고.



https://www.youtube.com/watch?v=l0GN40EL1VU

찬란한 여름엔 역시 '히사이시 조 - Summer'을 들어야 합니다.


https://brunch.co.kr/@pyeonri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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