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 위에서 마음의 빗장 풀기

퇴사 후,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by 편린

게 눈 감추듯 속 시원하게 퇴사를 감행했다고 해서 경직됐던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누그러지는 건 아니었다. 분명 회사만 박차고 나가면, 그 다음 날부터는 곧바로 평온한 일상이 찾아들 것만 같았는데. 그간 누적된 피로가 온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은 방 안에서 낮잠을 챙기며 하루를 통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새벽 4~5시가 돼서야 잠을 청하고, 오후 4~5시가 돼서야 하루를 시작하는 제멋대로 일상이 습관이 되었고, 망가진 수면 패턴이 한낮의 찬란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시작했다. 올빼미 습성을 타고났지만, 출근이라는 규칙 안에서 성질을 죽이고 산 지 오래였으니, 간만에 그 본성이 부활했던 것.


이제는 깨어있는 시간에도 몸에 바짝 들어갔던 힘을 풀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정신없이 회사를 다니던 평일 대낮에 이제는 선물 같은 시간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움트기도 했다. 20대의 1/3은 운동으로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운동을 즐겼던 시간들을 반추하다 보니, 문득 미국에 살 적에 성실히 다녔던 요가 수업이 떠올랐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 생활을 즐기던 시절이 참 값지기도 했지만, 때때로 이방인이라는 특성이 나를 외롭게 할 때도 많았다. 그런 공허감이 찾아들 때마다 요가라는 행위에 몸을 누이곤 했었는데, 문득 그때의 그 기운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던 것이다.


추진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는 충동이 들자마자 동네의 모든 요가원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중에서 가장 나와 결이 맞아 보이는 요가원을 하나 찾았다. 인테리어가 수려하다기보다는 가벼웠고, 상업적인 분위기도 일절 느껴지지 않으며, 분방한 요가 수련을 실천하는 곳이었다. 빡빡하게 커리큘럼을 짜 단계별로 요가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아니라, 요가를 좇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수련하는 곳이라는 설명도 작게 적혀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요가원으로 첫걸음을 했다. 모두가 각자의 수련에 집중하는 이곳에서는 잘함과 못함이 구별되지 않았다. 옆 사람이 요가 자세의 고수라든가 하수라든가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니. 그리고 매일 아침 요가원 선생님은 적막 속에서 세상을 유영하는 법을 설파하셨다. 때마침 사회적인 틀을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스스로를 방생했던 무렵이라, 그 수련을 더 깊이 체화할 수 있었다.


"너무 힘들이지 않는 하루를 보내세요."

"오늘도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온전히 비워내야 또 그만큼의 힘을 채울 수 있습니다."

"정해진 것에서 벗어나 두려우신가요? 우리는 이대로 그냥 흘러가 봅니다."

"한 자세로 오래 버티다가 다시 돌아오면 저릿하던 다리도 차츰 괜찮아집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유연한 삶의 태도는 차츰 나를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요가가 끝나면 불을 꺼둔 채로 10분간 눈을 감고 누워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하면, 찬기가 자리 잡은 배 위로 선생님이 슬쩍 요를 가져와 올려주셨고, 그 후로는 짧은 수면에 들었다. 어떤 날은 주위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긴장이 많아 아무 데서나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잠시나마 모든 근심을 잊은 채 단잠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몸이 긴장으로부터 해방되니, 예상치도 못한 눈물이 주르륵.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들 하던데. 무엇보다도 나는 그간 힘들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멀리 떠나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게 사회적 억압이든 개인적 강박이 만들어낸 억압이든, 그 종류에 상관없이 족쇄가 풀리는 느낌. 그리 몸을 이완시키며 몇 달간 매일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날의 상태, 그날의 결에 오롯이 내 몸을 맡기는 것. 정해진 루틴 안에 나를 욱여넣기보다는 바람처럼 흘러가며 호흡하는 것. 그런 일련의 수련들이 요가원을 빠져나와 내 일상까지 스며들었고, 그렇게 나는 차츰 흘러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어지는 요가 수련 끝에 나는 다시 평온을 찾았다. 선생님은 성취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물구나무서기가 너무 해보고 싶었다. 3개월 내내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주저하다가 결국 머리 서기 자세 시르시아사나를 성공한 날 엄청난 쾌감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요가원에서의 성취감은 딱 그 정도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오로지 흘러가는 움직임과 호흡에만 몸을 맡겼고, 그렇게 나는 진짜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과정 아닐까. 몸을 풀어내는 시간을 통해 결국 마음에 굳게 걸려있던 빗장까지 풀어냈고, 그 후로는 진짜 나를 맞이해 안온한 인생을 살아낼 힘을 얻었으니.


그러니 삶의 성숙을 위해 가장 필요한 수련은 어쩌면 힘을 빼는 것이 아닐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좋아하시나요? 제가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요가원에 처음 발을 들인 날 요 에에올 시그니처 돌멩이들이 저를 반겨줘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르겠습니다. :)


https://brunch.co.kr/@pyeonri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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