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글 모임이 쏘아 올린 공

퇴사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by 편린

초등학생 시절에는 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따냈고,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논술 경시대회에 나가 금상을 따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글 쓰는 시험을 통과해 멋진 방송국에 입사했다. 오랜 세월을 글이라는 벗과 친숙히 지나왔지만, 단 한 번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어른들은 밥벌이 안 되는 글 쓰는 일 따위는 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세상에서 점점 스러져가는 책을 만드는 일은 그다지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인문학도가 대학을 나와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나마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그 PD라는 직업, 그 정도가 괜찮겠다고. 그게 아니라면, 공부를 더 해서 변호사가 되거나, 어디 금융권에 취직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그것도 아니라면 평생 동안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왠지 어른들의 말에는 항상 정해진 답과 예견된 미래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치열했던 대학 생활을 종료하고, 나는 결국 그토록 부르짖던 방송사 공채에 붙었다. 그렇게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대기업 사옥을, 어깨를 한껏 드높인 채 드나들었다. 아마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찾기 마련이니.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안정적인 길 위에 올라서서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기 시작했다.


영차영차 기를 쓰고 올라간 그곳에서 내가 용감하게 퇴사를 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굳이 나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 하는 성향, 주도적으로 내 작업물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욕망, 악하게 남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는 태도 같은 것들이 나를 회사 밖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잠시나마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 어쩌면 나는 PD가 되어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기보다,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일을 하기에 앞서, 단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멋져 보이는 방식을 택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밀려오니 회사를 나와도 얼마든지 나만의 말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자유를 얻게 된 나는 결국 언제나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주던 글이라는 아이를 정성스레 품고 싶어졌다. 종종, 아니, 꽤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한 말씨를 전하고 힘 나게 하던 내 생각이 다듬어진 글에 담겨 세상에 나온다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잠시나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폐허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이 책이라는 매체가 스러져가는 누군가에게는 한줄기의 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꿈을 꾸게 된 내게 가장 반갑게 찾아왔던 일은 평소 존경하던 작가님이 운영하는 글쓰기 워크숍에 나가는 것이었다. 세상에 내 종이책을 공개하기 전에 평소 내가 쓰던 글들을 조금씩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런 시간을 거친다면, 사람들은 주로 글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지, 어떤 글을 읽고 좋은 감정을 느끼는지,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글 모임에서는 매주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한 편씩 적어내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낭독하고, 그 글에 대한 서로의 덧글을 나누었다. 유난히도 그 추위가 매서웠던 새해부터 시작해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한여름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우리만의 다정한 방식으로 글쓰기 릴레이를 내달렸다. 서로의 감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적으로도, 문체상으로도 더 풍성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서재에는 개성 있는 원고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가 10주년을 맞이하던 해, 나는 그간 갈고닦아온 글들로 이곳에서 온라인 작가로 등단해 본격적으로 나만의 글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너무나도 친절한 이 플랫폼 안에서는 어렵지 않게 책 한 권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또 어렵지 않게 서로에게 응원의 말씨를 전할 수도 있었다. 이제는 차분히 적어 오던 글들을 묶어 책 한 권으로 내겠다는 다짐을 안은 채 부지런히 새로운 출발선을 갈고닦는 중이다. 브런치 작가로 첫 발을 디딘 '작가'라는 나의 새로운 꿈이 훗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생각을 전하는 등불 같은 모습으로 잘 자리 잡기를 바란다. 좋은 글과 문장에는 한 사람을 살려낼 만큼 강력한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10년 후에 나는 지금껏 브런치가 달려온 세월만큼 더욱 견고해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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