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이 글에는 드라마 <죽도록 하고 싶어>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는 것.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그 호흡과 리듬이 저마다 다를 뿐. 특별히 짤막하거나 길다고 해서 영원을 보장받은 인생은 어디에나 없기 때문에 더없이 지금이라는 시간은 귀하다. 그리하여 생의 마감 기일이 곧장 세차게 달려든다 해도 당장 세상이 끝날 것처럼 사랑하고 싶다. 그러다가 그 기한이 조금씩 더 단축되어 버린다 해도 그 궤도 안에서 잠시나마 강렬한 진폭으로 생동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껏 얽히고 내던지며 한 번뿐인 생의 심연을 마음껏 헤집어놓고 싶은 마음이랄까.
몰리와 이웃 남자. 몰리와 니키. 그리고 몰리와 또 다른 몰리.
주말 동안 한참을 미뤄두었던 드라마 <죽도록 하고 싶어> 전편을 몰아보았다. 자극적인 소재로 이목을 끌던 몰리의 욕망 탐험 고군분투기를 내내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마지막 회차에 가서는 정말 오랜만에 묵직한 울음을 한바탕 쏟았다. 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죽음이 다가오는 절친한 친구를 위해 애정을 쏟던 직업 따위는 쿨하게 떠나보내고, 오롯이 친구의 마지막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포용의 폭.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현실의 밑바닥에서, 서로의 약점을 온통 드러낸 상황 속에서도 용감히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과감한 발걸음. 그리고 다가오는 세상의 끝에 아슬히 버티고 서서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한 사람의 빛나는 여정.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사랑이, 꽤나 오랜 시간 나만의 사랑을 잃어가던 길목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가짜 사랑 말고, 진짜 사랑을 하며.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런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는 것. 애정이 담긴 관조에 아무런 이유가 따라붙지 않는 것. 그저 먼발치에서 그 사람이 뛰노는 것을 보고 말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때때로 불안해하고 때때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준비 자세를 취하는 스스로의 고군분투에 조용히 눈감아주는 것.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가꾸어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게 놓인 가장 두터운 과제 뭉치가 아닐까. 그러고 나서 언젠가 다가올 생의 끝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누었던 다정을 한껏 반추하고 싶다.
온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온기가 필요하다. 그 열감을 나누기 위해서 아무래도 나는 더 많이 데워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0IvJEwfgh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