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임진왜란에서 첫 승리한 장수를 죽인 선조

by 편작가

임진왜란 당시 연전연패하던 조선 육군이

육상에서 거둔 첫 승리가 있었지만

그 전투를 지휘한 장군은

조선 조정으로부터 사형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조선군이 승리했던 전투는 바로 해유령 전투입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430npd430npd430n.png 한산

부원수 신각이 양주 해유령에 매복해 있다가

마을을 약탈하고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선발 부대 중

수십 명의 병사들과 싸워가지고 전멸시킨 첫 승리였습니다

그렇게 육상에서는 신각이 첫 승전고를 울리게 되었죠


이 전투는 조선 육군이 거둔 첫 승리였습니다

비록 소규모 전투였으나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바닥 끝까지 내려가있던

조선군의 사기를 크게 올리는 계기가 되죠

이 승리 덕분에 조선군도 일본군을 상대로

근접전투에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부원수 신각이 육상에서 첫 승전고를 울렸으니

조선에는 꽤 희망적인 사건이 됩니다

해전에서도 승전고가 들렸고

육상에서도 승전고가 들렸으니

선조와 조선 조정은 금세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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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 조정은 그런 그에게 포상을 주질 못할망정

부원수 신각에게 사형을 내리게 됩니다

조선 조정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도원수 김명원이 한강 싸움에서 패한 후

신각이 명령불북종과 더불어 도망쳤다는

보고를 올리게 됩니다

신각이 적전 이탈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신각은 후퇴하는 도중에도

패잔병을 수습해 전략적 위치인

경기도 양주 일대로 이동해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려고 하였습니다

명백한 도원수 김명원의 오판이었죠

그렇기에 도원수 김명원이 전투의 패한 책임을 돌리거나,

신각을 오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장계 한 장도 없이 부원수 신각이 사라지자

도원수 김명원은 여태껏 많은 장수가 그랬듯

신각 또한 적전 도주한 것으로 판단하고서

조선 조정에다가 도망쳤다고 보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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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우의정 유홍이 신각을 참형하자고 건의했고

선조 또한 그에 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일개 병사도 아닌 부원수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선조와 조선 조정은 너무나도 성급한 결정이었습니다

신각이 제때 장계를 보냈거나

신각을 잡아들여 추궁하였다면

사형까지 이어지지 않았겠지만

전시 중이라는 급박한 상황에

신각이 깜빡하고 장계를 보내지 않았거나

장계를 보냈지만, 중간에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ocqs71ocqs71ocqs.png 전란

그러면 선조와 조선 조정은 왜 이렇게

성급하게 판단했을까요?

조선군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도망치기 급급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군율이 붕괴하기 전에

군율로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기에 선조와 조선 조정은 진위도 따지지 않고

부원수 신각을 성급히 처벌한 것입니다

그 후 신각의 승전보를 전해 듣게 된 선조와 조선 조정은

자신들의 오판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재빨리 사형집행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사형을 명한 뒤 승전보 소식을 들은 선조는

매우 놀라며 급히 사형을 멈추게 하였으나

신각의 죽음을 막지 못해 선조는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8iqzsu8iqzsu8iqz.png 전란

신각의 첫 승리와 동시에 누명으로 처형당했다는 소식은

조선군들에게 조선 조정에 대한 불신과

군율에 대한 회의감을 증폭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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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전보로 사기를 고무시켰지만

그 장수를 사형시켜 전의를 상실시켰던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죠

신각이 죽자 신각 휘하에 있던 병사들은

흩어지거나, 와해 되었다고 합니다

전투에서 후퇴하는 와중에도 전황을 읽고

북상하는 왜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 지형을 선택해 이동한 신각

징비록에 그를 기록하길 군인으로서 책임을 다한 인물이며

공적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비극적인 장수로 기록했습니다



영상으로 보시면 조금 더 자세한 설명과

풍부한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Pyeon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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