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중 일본군이 북방 여진족하고
대규모 전투를 벌여
가토가 겁에 질린 채 퇴각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된 걸까요?
가토 기요마사가토 기요마사는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양을 점령하자
열등감과 더불어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기에 공명심과 명나라로 가는
진격로를 미리 탐색할 겸
후환이 될 수 있는 여진족을
점령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 팔도지도가토가 함경도에 주둔하면서
약탈을 하기 위해 함경도로 종종 침범하는 여진족이
눈에 거슬리는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가토는 조총이라는 신식무기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할 때도 그랬듯이
쉽게 여진족의 부락을 점령하며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며 가토는 점점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조선과는 사뭇 다른 지형과 환경에 당황했고
여진족 특유의 기동력과 활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에
가토군은 생각보다 고전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여진족이 일본군을 깊이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이었죠
여진족에게 패배란 작전이었습니다
결국 너무 깊게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 찰나
가토 부대는 여진족의 대규모 기습 공격에 대패했으며
가토는 겁에 질린 채 퇴각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최종병기 활
어느 한 곳에도 이러한 대규모 전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가토가 굳이 양면전선을 펼쳐야 했을까?
라는 의문점도 생기죠
다만, 가토가 함경도 북부까지 진격해
여진족과 어느 정도 소규모 접점이 있었다는 건
정황으로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여진족이 여러 부족 단위로 나뉘어 있어
약탈이 목적이었던 여진족과 부족단위로
가토군과 부딪쳤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함경도 북부까지 진출했던 가토는 그럼 왜 멈췄을까요?
낯선 지리적 환경과 너무 길어진 보급, 날씨 문제 등
거기에다가 여진족이라는 새로운 세력까지 등장하니
무리해서 굳이 북진할 필요가 없다 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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