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탈한 오늘"-문지안-

오늘이라는 일상

by 라엘북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이 문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의 깊은 뜻을 일찍 깨닫기란 참 어렵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거나,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반추할 때에 대부분 깨닫는다. 그런데 '무탈한 오늘'의 저자는 이 뜻을 일찍 깨달은 것 같다. 책 날개에 저자 소개란과 책 내용을 보니 그 이유가 나와있었는데, 20대의 젊은 나이에 암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느꼈을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그가 쓴 이 책을 통하여 어렴풋이나마 그가 품었던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 어떤 이가 서있는 생과 사의 기로를 느끼고 파악한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 있겠으나,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책을 쓴 이유라 생각이 들고, 또한 책 읽기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기다림을 이렇게 말한다. "기다림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다리는 대상에 따라서도 다르다."(p.35)

애프터문 군단의 뭉이(강아지)는 저자가 여행을 떠나면 사료를 먹지 않고 기다리다가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다시 사료를 먹는다. 이것이 뭉이의 기다림 방식이다. 이 문구에 담긴 뭉이의 마음을 나도 잘 안다. 예전에 키웠던 '사랑이'라는 우리 집 강아지가 뭉이와 같은 기다림의 방식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는 나와 엄마와 아빠 중에 아빠를 가장 좋아했다. 엄마는 강아지 키우는 것을 싫어해서 사랑이에게 애정을 많이 주지 않았지만, 매번 사랑이의 밥주는 것을 담당했기에 사랑이는 자신에게 밥주는 사람으로써 엄마를 좋아했다. 나는 사랑이와 즐겁게 뛰어놀고 함께 많이 장난도 쳤지만 내가 커감에 따라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이와 점차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결국 12년이란 시간 동안 한결같이 사랑이를 보듬어주고 함께 했던 사람은 아빠였는데, 사랑이도 무던히 아빠를 좋아했다. 어느 날 아빠가 암을 마주하고 3개월의 입원기간을 거쳐 결국 하늘나라로 떠난 후, 엄마와 나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아빠가 없음을 알아차린 사랑이는 음식을 거의 입에 데지 않았고, 밤이 되면 구슬프게 마치 늑대처럼 울었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갔다. 벌써 이 일이 14년 전이다.


글의 소재는 대부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생명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과의 따뜻한 대화가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아 곱씹어보게 하였다. 저자가 보여주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아무런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만 시선을 두게 하는 현대 사회의 올가미를 조금씩 끊어냈다.


이렇게 무탈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개인의 평온함 뿐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와 정의를 실천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야기한다.


"직장에서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은 사주의 온갖 추잡한 갑질에 순응하게 만든다.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는 사원이 90%라면, 그 기업의 사주는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국을 가진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런 사원이 10%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정의롭게 살겠다는 사회적 욕망과 출세를 꿈꾸는 개인적 욕망 사이의 균형이 가능해진다. 이게 소확행이 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라면 소확행에 대해 무엇을 두려워하랴." 한겨례 2018년 7월 1일자


근래에 유행했던 '소확행'이라는 단어와 '무탈한 오늘'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분명히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탈한 오늘'이야말로 분명한 '소확행'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무탈한 오늘'이 이어지길 이 책을 통해 빌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