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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귀찮-

나의 목소리가 들려

by 라엘북스

짧은 문장, 간결한 그림체, 그에 반하여 긴 호흡, 깊은 생각. 이것이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을 읽고 떠올린 단어들이다.

'허락 받는 것보다 용서 받는 것이 더 쉽다'는 영원한 명언을 품고 여러가지를 자행하며 살았는데, 이번에는 허락을 받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몹시 흔들리는 중이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나와야하기 때문에.


그러나 '가장 소중한 자본으로서의 인간'의 기치를 내세우는 시대에 회사 밖에서 살아간다는 것동시에 가장 소중한 자본이 되지 못하는 인간처럼 여겨져서 쓰레기처럼 될까 불안을 잔뜩 껴안는다. 나도 나의 가족까지도.(엄기호, '단속사회', 283.)


"사실 우리의 아픔은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기득권을 누리는 사회 일각에선 자꾸 개인의 문제로 돌려 청년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요......우리 사회는 어떤 한 개인이 윤리적으로 잘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든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불법을 부추기고 합법엔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무능한 것이고 약삭빠르고 초법적으로 살면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한동일, "라틴어수업", 177.)라고 꼬집은 한동일 신부의 말은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그대로 살아내야만 하는 신념을, 그리고 그 신념을 유지하는 방법을 책 속에 등장한 '맥주광 삼촌'에게서 발견했다. 회사를 그만 둔 저자에게 '맥주광 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때론 그 유혹이 '기회'라는 탈을 쓰고 오기도 하거든. 좋은 감투로 오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그 유혹을 뿌리치고 버틸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거 하나만큼은 지켜내고 싶었기 때문이야.


​(중략)

네가 지키고 싶은 것, 그걸 오래도록 잘 지키고 싶다면 때론 포기해야 하는 일도 생길거야.

아니, 포기해야 하는 게 더 많아 질 수도 있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을 우직하게 하려면,

중간중간 들어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되거든.


어쩌면 그게 오는 기회를 잡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 고생해서 지키려 했던 게 잘 자라커져있으면

그게 정말 행복한 일일거야."(p.176)


​아마 저자가 소중히 여기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책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목소리인 것 같다.

조직의 소리가 아닌 완전한 주체로서 나의 소리.


"늘 조직의 소리만 내던 나에게 이제 겨우 나의 목소리만 생기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것이 내가 아직은 서툰 한 발을 내딛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나는 아주 조금씩, 나의 두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p.245)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를 위해 함께 일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살아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목소리를 발할 수 있는 기회와 권력을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권위주의는 뒷걸음질치고,

협력과 경청의 삶이 우리를 향해 손짓 할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는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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