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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북스 Sep 12. 2019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말의 품격"-이기주-

'더불어 살아가기',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어제 아침, 걷기 힘드신 어르신들을 태우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교회차를 몰아 나갔습니다. 둥글게 우회전을 하는 곳에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잠깐 차를 정차했습니다. 다행히 도로폭이 넒어 인도 쪽으로 바짝 붙이면 옆쪽으로 다른 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다니는 차만 생각하다보니, 사람들이 건너는 횡단보도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를 따라 방호울타리가 세워져 있고, 횡단보도 라인만 인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뚫려 있는 곳인데, 제가 정차하면서 그곳을 거의 막아버린 모양입니다. 어느 한 분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창문을 두드립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횡단보도 막아서 세워놓으면 어떡해요?"


저는 최대한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어르신 한 분이 타셔야 해서 잠깐 세웠습니다." 


"아, 그게 문제가 아니고 차로 이렇게 막아놓지 마시고, 조금 더 앞으로 빼세요."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이제 무조건 그렇게 말하는 분의 얼굴이 싫었습니다. 창문을 올려버리고 어르신을 부축해서 태우며, 말로는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저도 계속 노려보았습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부끄러움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정확히 잘못은 내가 했는데,  그저 내 기분이 상함에 따라 스스로 잘못을 타협하며, '뭐 이런거 가지고 화를 내나?' 생각하며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인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웬 차가 떡하니 서서 거의 막아서고 있다면, 나였어도 당연히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말의 품격>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주변 사람과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는 '나'와 '우호적인 타인'과 '비우호적인 타인', 이렇게 셋뿐이다.(p.183)


내 기분이 상한 순간, 상대방은 순식간에 '비우호적인 타인'이 되었습니다. 내 잘못을 인정하며, 미안하다는 말 하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겠다고 하는 내가 참 한심해보였습니다.


타인을 조금 더 너그럽게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부끄럽지만 글을 통해 한번 더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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