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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l 16. 2024

가정폭력에 노출된 이들이게


2018.07.16(화)


공황증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지럽다. 한동안 잠잠했던 녀석이기에 다시금 얼굴을 내민 이 녀석이 너무나 당혹스럽다.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증상이 나아졌다고 약을 함부로 중단하면 안 된다는 꾸지람을 들었다. 하얀 알 두 개, 주황 알 한 개로 구성된 아침, 점심, 저녁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방치한 만큼 약의 개수가 많아진 느낌이다. 저녁글자가 새겨진 한포를 뜯어 입에 털어 넣는다. 알약을 잘 못 삼키지만 알 크기가 작아서 다행히 어렵지 않게 넘어갔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앞으로 내가 버텨가야 할 날들의 무게가 공기에 희석돼 무겁게 내려앉는다.



2018.07~2018.08


여전히 회식도 많았고 동기모임도 많았다. 탁구도 치러 다녔고 동기엠티도 다녀왔다. 간간이 친구들과의 약속장소에 나갔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 크게 다퉜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싸웠다가 다시금 같이 또 정신과를 갔다. 사외교육을 갔고 워크숍을 했다. 타 부서 꼰대부장을 만나 신입들이 빠졌다면서, 빨리 뛰어가서 커피를 안 가져오냐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으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과 문자가 와서 화해했다.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여름날의 더위가 기억이 안 나게 바쁜 날, 혹은 무난한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여전히 숨은 가빴으며 회의를 하다가 뛰쳐나와서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기도 하고 갑자기 차오르는 슬픔과 불안을 감당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2018.08.26(일)


비명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불현듯 몰려오는 현실감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깼다. 고성은 거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의 싸움이 시작됐다. 쿵쿵쿵쿵. 심장이 불안을 감지한 땅거미처럼 스멀스멀 꿈틀대기 시작했다. 눈을 꼭 감는다.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에서 의식을 점점 멀리한다.


창문이 열린다. 양탄자가 손을 내민다. 나는 양탄자가 내민 손을 잡고 가뿐하게 양탄자에 올라탄다. 그리고 하늘 멀리, 푸르른 창공을 향해 솟아오른다. 멀리멀리, 저 멀리,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날아간다. 대나무숲을 지나며 청명한 풀벌레 소리를 듣고, 강변을 지나며 햇살이 내려앉은 물결 냄새를 마시며, 또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르며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훅 떠올랐다, 짙은 소나무로 빼곡 매워진 산을 향해 몸을 날린다.


욕설에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이미 상황은 심각했다. 자주 보던 상황, 자주 듣던 얘기, 자주 듣던 울음이 반복된다. 고등학생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성인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취직을 하면 괜찮아지겠지. 바람은 매번 유예됐고, 어긋난 기대는 창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집에서 못 있겠다." 엄마는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겪어냈고 동생과 나를 위해 희생했다. 이혼을 왜 진작 못했냐고 여러 번 따져 물었지만 그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너희들 대학졸업할 때까지만." 우리는 엄마의 족쇄였다. 하지만 사실 동생과 나도 엄마의 이혼을 누구보다 바랐다. 이 끔찍한 집에서 아빠와 함께 사는 것 보다야 셋이서 사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았다. 이건 '그럴 수도 있다'는 예상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다. 아빠가 협의 이혼을 순순히 해주지 않을 테니 소송 이혼을 해야 할 텐데, 비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과정이 너무나 두려웠다. 가장 두려운 건 아빠의 보복이었다. 접근금지신청을 한다고 해도 접근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건 한순간일 거다. 우리 셋의 목숨을 걸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빠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방법을 실제로 알아보기도 했고, 혹은 자살로 꾸며서 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잔혹했지만 그 후에 처벌을 받는 게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걱정과 원망과 슬픔이 뒤섞인 밤을 견뎌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출근을 했다. 엄마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아빠에게서 안전하게 도망쳤기를. 성인이 된 나는 아직도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부서회의를 하고, 필요한 PPT를 만들고, 회의록을 작성하고, 시간은 지났다. 내 우울도 불안도 방치한 시간만큼-공황장애를 발견한 대학교 4학년 때 부터가 아니라, 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었던 내가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때부터- 몸집을 키워 나를 좀먹어 가고 있었다.





* 저는 솔직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솔직한 글만이 진실된 감정이 우러나와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 글의 주제인 공황장애 얘기를 하자면 그 원인인 가정사를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기억과 부끄러운 가정사임에도 써나가 보고자 합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많은 이들에게 '살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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