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Jul 02. 2024

외국인 상사와의 첫 대면 Oh NO!

2018.04.24(화)


우리 부서와 옆부서의 부서통합회식이 있는 날이다. 통합회식의 배경으로는 두부서의 임원이 같다. 임원은 룩셈부르크사람으로 내가 입사하고 나서는 그를 처음 실제로 보는 날이다. 화상으로 미팅을 하면서 안면을 트긴 했지만 대면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 상당히 떨렸다. 어떻게 첫인사를 할까 고심을 하다 드디어 그를 만났는데 압도적인 첫인상에 놀라서 어떻게 인사를 건넸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190cm은 족히 넘어 보이는 키에, 베일 듯 날카로운 코를 가진 서양 영화배우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Hi Cocoa. Nice to see you."


중저음의 목소리와 다소 강한 악센트가 그의 진한 이목구비와 맞물려 강인하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회식 전 미팅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의 향연을 보며 열심히 미팅록을 썼다.(미팅록은 막내인 내 담당이다.) 그런데 웬 걸....... 들려야 말이지. 50%는 아예 안 들리고, 40%는 대충 단어만 들리고, 10%만 제대로 들렸다. 제대로 들은 10%로 이래저래 말을 덧붙여 그래도 미팅록을 만들어냈다.(다행히 글짓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미팅록은 몇 차례의 전달과 반품 과정을 거쳐야 임원에게 전달될 수 있다. 비선실세 대리님(<12화 참조>)에게로 나는 미팅록을 프린트해서 들고 갔다. 그러면 이제 대리님의 손에는 빨간 볼펜이 쥐어지고 눈에서는 강렬한 레이저 빛이 나온다. 영어를 잘하는 대리님의 눈에는 오타나 잘못된 문법도 바로 딱딱 보이는듯하다. 내가 몇 번이나 검토를 하고 갔는데도 빨간 줄이 그인 곳은 꽤 많았다. 미팅록을 수정하면서 나는 언제쯤 저렇게 포스를 풍기며 누군가를 가르칠 있는 위치가 될까 생각해 본다. 





오늘의 회식 메뉴는 한우다!!! 유후!!! 일 인분 가격이 25,000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메뉴다. 메뉴판만 보는데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절대 내 돈 주고는 먹을 수 없는 한우. 빨리 나와라. 절로 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뿔싸. 근데 자리 배정이... 좀 난감하다. 15명 정도 되는 인원이 주르륵 테이블 옆으로 늘어 앉았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임원이 내 앞자리로 걸어오더니 앉았다. 마음 편하게 고기를 먹긴 그른 것 같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다. 영어 면접을 어째 저째 통과해서 들어오긴 했으나, 영어회화를 배워본 적도 외국인과 대화를 해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래도 토익을 했던 짬바가 있는지라 듣기는 어느 정도 됐으나 문제는 말하기였다. 우리 부서에 나를 제외한 모두는 해외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경험이 있었다. 나빼고는 모두 자연스레 웃고 농담도 하며 대화를 하는데 대화에 끼지 못한 나는 쭈구리처럼 쳐다만 봤다.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고기나 구워야지. 집게를 집어 들고 영롱한 한우에 초점을 맞추며 고기를 뒤집으려는 찰나 대리님이 집게를 뻇어갔다.


"어머. 코코아야. 너는 많이 먹어. 고기는 내가 구워야지."


엇, 이건 무슨 상황이지. 매 회식 때마다 고기 굽기는 내 담당이었다. 대리님은 농담 반 진심 반으로 "고기 안 타게 빨리빨리 뒤집어야지."라고 하곤 했는데, 이건 무슨 예상치 못한 생경한 풍경이란 말인가.


그녀는 하하 호호 웃으며 고기를 구워 임원 접시 위에 한 점, 부서 막내 20살 여직원에게 한 점, 그리고 내 앞에 한 점을 놔주었다. 미소 지으며 많이 먹으라는 말이 곁들여졌다.


"Oh. You are so kind. Daeri."(이름은 가명인 (Daeri : 대리)를 쓰겠다.


임원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파란색 눈동자를 빛내며 그녀를 놀랍다는 듯 쳐다봤다. 그는 감탄하며 그녀에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왜 막내가 있는데 네가 고기를 굽니. 너는 참 친절하구나. 너희는 이런 사수를 두어서 참 좋겠다." 등의 칭찬이 귓가를 스쳤으나 나는 진심으로 웃지도 감사해하지도 못했다.  


분하다. 오늘 또 당했다. 그녀가 괜히 비선실세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사회생활 처세술은 대단했다. 고기 굽기 쇼를 보여준 후에는 20살 막내직원이 추워하니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주기까지 했다. 임원의 감탄이 또 한 번 이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를 보면 혼란스럽다. 분명 일을 할 때는 똑 부러지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닮고 싶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볼 때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절대 나는 저런 사수가 되진 않아야지라고 다짐하는 편,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자연스레 저렇게 되는 건가 싶다가도,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저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로 생각이 귀결될 때면 절레절레 고개를 젓곤 했다. 나는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으로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렇게 까지 해서 인정받을 자신은 없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덕분에 고기는 원 없이 먹었다. 배나 빵빵하게 채워야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에 3인분이나 혼자서 먹어치웠다. 75,000원이 고스란히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왠지 타당한 횡령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내가 너무나 잘 먹었는지 임원이 나를 보며 "너 정말 잘 먹는다"는 칭찬을 했다.(칭찬이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밝게 웃으며 "It's so delicious."라는 기초 문장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대화가 짧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에겐 그게 나에게 말을 걸려는 신호였던 것 같다. 


"Why did you apply to this department? (왜 이 부서에 지원했니?)"


예상치 못한 면접질문이 날아들었다. 계속해서 그의 질문은 길게 이어졌는데, 전공과 다른 부서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땀이 삐질삐질 솟아오른다. 다행히 질문은 파악했다. 자, 그럼 이제 답변을 해보자. 


"Umm....... The reason why I apply to this department......."


이까지가 내 한계였다. 그 뒤로는 버벅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문법 다 무식하고 그냥 단어 나열식으로 말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75,000원짜리 고기가 얹힐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아직 8시밖에 안 됐다. 2차를 가자는 말이 나온다. 오늘도 편하게 잠들긴 그른 것 같다. 집에 가서 얼마나 많은 이불킥을 해야 할지. 신입사원의 길은 멀고 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