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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n 18. 2024

아침마다 과일 깎는 신입사원 보셨나요?

2018.02.28(수)


인도사람을 만난 건 회사에서가 처음이다. 우리 부서의 인도분(앞으로 예명인 '란초'라고 부르겠다. 영화 세얼간이의 주인공 이름이다 ㅋㅋ.)은 얼굴도 눈도 코도 모두 동그랗고 마음도 동그랗게 정이 많았다. 40도에 육박하는 인도에서 살다 처음 겪는 한국 겨울의 추위에 사무실에서도 늘 파카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종교적 이유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에게는 한국 음식도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다. 아침, 저녁이야 본인이 원하는 식단을 먹을 수 있다지만 점심은 회사밥을 먹어야 하는 데 늘 쌀밥 조금과 인도인에게도 익숙한 야채 조금(대체로 브로콜리, 감자 등)을 먹고 지냈다. 볼 때마다 얼마나 배가 고플까 참 안쓰러웠다.


그는 배고팠지만 인심이 넘쳤다. 종종 아침에 과일이나 견과류를 가지고 왔다. 수박, 딸기, 키위 등 참 종류도 다양했다. 부서원들과 모두 나눠먹으라고 나에게 과일을 건네주었다. 참 따스한 마음이다. 말하는 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휜다. 인상은 마음의 거울이 맞나 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인정이 내게는 다소 까다로운 과제였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과일을 씻고 깎으면서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현타가 올 때가 있었다. 못된 딸이었던 나는 집에서도 과일 한 번 깎아본 적이 없었는데 회사에서 별 과일을 다 깎았다. 좁은 탕비실 한 구석에서 모자란 접시를 찾아 헤매는 게 일이었다. 서투른 칼질에 손이 여러 번 밸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눔의 대상이 부서 한정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끔은 2층 전체로 그 인원이 확장되기도 했는데 그때면 나는 멘붕이었다. 지금에야 시대가 바뀌었지만 내가 신입이었던 7년 전까지만 해도 미팅이 있을 때 미팅 준비를 하는 게 내 몫이었다. 미팅룸을 예약하고 손님들의 커피와 차를 탔다.


물론 암묵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 전형으로 취직한 20살 선배가 담당이기는 했으나 신입인 나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티를 타고 함께 과일을 자르고 함께 2층 전체에 돌릴 견과류를 나눴다. 그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제야 내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사실 단순히 몸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느덧 출근하기 전 오늘은 제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잦아졌다.






2018.03.01(목)


란초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래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인데 혼자 간다고 하기가 뭣해 그 당시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집들이 선물을 사가야 하는데 도무지 뭘 가지고 가야 할지. 우선 흔한 생필품보다는 음식이 좋겠다는 걸로 의견이 모아졌고, 평소 란초의 식습관을 고려해 과일로 하자는 결론이 났다. 마트에 가서 알이 크고 빨간 딸기를 골랐다. 그리고 치즈케이크도 샀다. 다행히 란초는 치즈와 우유까지 못 먹는 베지터리안은 아니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아파트의 벨을 눌렀다. 란초는 환하게 웃는 얼굴이 우리를 맞았다. 어제까지도 회사에서 봤던 얼굴이지만 이렇게 색다른 곳에서 보니 더 동그랗고 푸근해 보였다. 다행히 그는 우리의 선물을 마음에 들어 했다. 란초의 집은 17평 정도로 아담한 거실과 방 2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거실 한편에는 게임 CD가 쫙 깔려있었다. 란초는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를 참 좋아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진한 카레의 향이 주방에서 퍼져 나왔다. 인도사람이 만들어 주는 카레요리라니. 이보다 특별한 요리가 있을까! 란초는 평소 닭고기도 잘 먹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닭고기가 들어간 카레를 선보였다.

"음. 맛있다."

남자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한국식 카레보다 좀 더 인도 향신료가 들어간 인도음식점에서 먹는 카레 같은 맛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좀 덜 전문적이고 좀 더 밍밍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와 카레를 먹고, 후식으로 우리가 가져온 딸기와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란초는 그 해 연말 한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갔다. 그는 더 이상 우리 부서에 없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가 가져온 과일을 아침마다 썰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인도인이 낯선 타국의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애정과 관심은 참 감사했다. 그가 떠날 때 우리 부서에 주고 갔던 선인장을 나 홀로 4년 동안 물을 주며 잘 키웠다. 이건 나에게 시킨 일이 아니었지만 내가 꼭 하고 싶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물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더 적게 줘야 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죽인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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