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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n 11. 2024

졸업 후 새로운 집단의 일원을 향하여

2018.02.23(금)


대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오전 일찍 학교를 찾는다. 엄밀히 따지자면 시원 섭섭에서 시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한다고 할 수 있다. 


7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한다. 1학년을 마치자마자 전과를 했고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애초에 전과를 한 목적과 휴학을 한 목적이 약대 시험 준비로 일치했기에 전과 전에도 후에도 사람을 사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약대에 진심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 등에 떠밀려 준비했던 시험이었던 만큼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실 3년씩이나 휴학을 한 것도 한 번 더 도전해 보자는 의지가 아니라 복학하기 싫은 마음에서였다. 그 덕에 안 그래도 고작 전과 후 1학기를 다니고 휴학한 데다 3년이나 지나버려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첫 복학하던 날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 사물함을 배정받고 짐을 넣으러 가는데, 복도 끝 위치한 화학과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부터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까지 모두들 나를 힐끔거렸다. 2학년 2학기에 갑자기 모르는 얼굴이 나타났다는 건 어떻게 보아도 쉽게 납득이 갈만하진 않았다. 전과를 했다기에도 복학을 했다기에도 2학년과 2학기 모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긴 했다. 그래도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볼 것 까지야 있나. 나는 처음 받아보는 시선세례에 괜스레 짜증이 몰려왔다. 물론 그들은 그저 처음 보는 사람이라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쳐다 본거겠지만.






그렇게 4학년까지를 버티고 드디어 졸업을 한다. 복학 후 나는 내내 조급함, 우울, 불안, 짜증, 경쟁심을 달고 살았다. 남들보다 3년이 늦었다는 게 크게 작용했다. 조교도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친구들은 장난으로 군대를 두 번 다녀왔냐고 놀리기도 했다. 휴학 전과는 다르게 학구열이 넘치는 동기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족보도 없이(인맥이 없어 못 구할 때도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독해져야 했다. 학창 시절 동안, 휴학한 동안 그 어느 순간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없다. 하지만 복학 후의 나는 달랐다. 내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사방이 막힌 골목길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경주마 같았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 덕에 늘 성적은 4.4 대였다.(모두 A+, 하나가 A0인 식이었다.) 졸업 전 취직을 해야 했다. 그래서 4학년때는 모든 자격증을 틈틈이 땄다. 지하철에서 인강을 듣고 학교 과제를 했다. 


그렇게 나는 졸업 전 취직을 했다. 그것도 가고 싶었던 회사에. 물론 그렇다고 기쁜 건 아니었다. 앞서 내 글에서 나열했듯이 나는 행복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불행해지기 마련이었다. 타고난 기질이든 과거의 트라우마가 만들어 낸 우울이든 결과는 그랬다. 가장 큰 건 아마 대학시절 인간관계에서 남긴 많은 후회들일 것이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늘 마음 한구석을 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학사모를 쓰고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이 안도감이 드는 한 편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좋은 일도 많았다. 이 시절 나는 굉장히 시니컬했기에 많이 좋은 것도 다소 나쁘게 보는 삐딱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참 감사했다. 삐뚤어진 나의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부모님과 동생, 이모와 외삼촌, 사촌동생, 친구 그리고 그 당시의 남자친구까지 많은 사람이 왔다. 아, 지금은 우리 부서 부장님인 그 당시 차장님도 참석했다. 함께 사진을 찍는 순간. 그리고 빕스에서 식사를 하는 순간. 난 진심으로 웃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풍만감으로 가득 찬 하루였달까. 그 순간 그곳에 있었던 분들께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렇게 졸업식을 성황리에 마치고 나는 다시 내 새로운 보금자리로 출근한다. 소속감은 인간에게 있어 참 중요한 안전기지다. 안 그래도 우울한 내가 만약 졸업 후 공백을 길게 가졌다면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집단에 속해있다는 것. 나를 그 집단의 일원으로 소개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게는 참 위안이 되었다. 가끔 내게 안정감을 주던 그 집단이 눈을 부릅뜨고 날 위협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시선을 까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때가 묻은 나는 몸소 깨달아 가고 있다.


7년이 지나 대리가 된 지금. 여전히 출근은 내게 힘들다. 매일 아침 아, 오늘 하루만 쉬고 싶다를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 안정감을 주는 그곳을 향해 나는 오늘도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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