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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n 04. 2024

퇴근 후에 혼자 쉬고 싶어요

외향인 사이의 내향인

2018.02.12(월)


동기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집단이 조성되면서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부딪히는 흔한 문제였다. 곧 발렌타인데이가 오는데 신입사원들끼리 돈을 모아서 초콜릿을 사서 돌리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나의 경우에는 이미 입사할 때 부서에 떡을 돌린 터라 '굳이 또?'란 생각이 들었다. 반정도로 초콜릿을 돌리겠다는 사람과 나와 같이 '굳이 뭘 하냐. 그러면 매번 계속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나뉘었다.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합리적이다. 내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안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못된다. 옆부서에서는 동기가 초콜릿을 돌리고 있는데, 내가 안 돌리면 비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썩 내키지 않음에도 결국에는 초콜릿을 샀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일이 점차 잦아졌다. 어색하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조금씩 친밀해지기 시작하니 친한 동기 무리가 생겼다. 나는 타인과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다. 그리고 성향도 꽤 까다로워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아니다 싶은 사람이 쉽게 나뉜다. 주로 내 사람이다, 친해질 수 있겠다 싶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내향적 성향을 지니며 소규모로 깊고 진득한 관계를 이어가길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동기의 대다수는 상당히 활발하고 타인과 쉽게 친해졌으며 다수로 모여서 노는 걸 선호했다. 내가 늘 부러워하는 성격이었지만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성격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내 룸메는 인싸 중에 인싸였는데 늘 사람을 끌어모으는 유형이었다. 자연스레 우리 방은 동기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퇴근 후 우리 방에 모여서 저녁식사를 다 함께 하는 게 자연스러운 관례가 되었다. 처음에는 룸메가 너무 고마웠다. 룸메가 아니었으면 나는 계속 친한 언니(<5화 뜻밖의 기쁜 조우> 참조)와만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눴을 거다. 룸메 덕분에 이 동기, 저 동기 다양하게 알아갈 수 있었고 지인하나 없는 타지에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서 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퇴근 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우리 집은 시끌벅적했기에 혼자서만 중간에 쏙 빠져서 방으로 들어가기도 애매했고 원치 않게 계속 거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마음의 벽이 쌓였다. 분명 다정하고 따뜻한 동기들이지만 내가 지치니 스스로 벽을 쌓아갔다. 이때쯤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소홀이 먹었던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내가 가진 에너지 보다도 더 빨리 고갈되어 갔다. 함께 웃으며 밥을 먹으면서도 빨리 방에 들어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초라해 보이고 그들은 빛나보였다.






한 가지 웃긴 에피소드도 있다. 20살 처음 클럽을 가본 이후로 처음 동기들과 클럽을 갔다. 20살. 정말 순수했던 시절. 나는 통금이 있었기에 클럽 스타트 하는 시간인 9시에 입장했다 10시에 나와서 집으로 갔다. 그 말인즉슨 아무도 없을 때 갔다가 이제 한 두 명쯤 들어올 때 빠져나왔다는 얘기다. 고로 클럽을 한 번 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희뿌연 담배연기, 사람으로 꽉 찬 내부를 보며 아, 이게 클럽이구나를 몸소 느꼈다. 동기들의 손에 끌려 나는 엉거주춤 몸을 흔들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는 게 뭔가 있어 보였다. 반면 나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옷도 나 혼자 너무 펄럭거리는 블라우스를 입은듯했다. 가끔 화려하고 파격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지만 대다수는 편한 바지와 스웨터 차림이었다. 나의 금색 프릴이 잔뜩 달린 블라우스는 촌에서 첫 시내 구경을 온 촌뜨기 그 자체 같았다. 한시간경을 서있자니 온몸에 진이 쭉 빠졌다. 동기들은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놀기도 잘했다. 나는 반면 공부도 어정쩡, 놀기에도 젬병. 혼자 술만 홀짝홀짝 들이켜다 어색하게 박수만 쳤던 기억이 난다. 역시 인싸들의 세계는 내게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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