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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May 21. 2024

두근두근 신입사원의 부서배치

영어 OMG

2018.01.10(수)


두근두근. 지금 뛰는 이 심장소리는 설렘 반, 걱정 반이 만들어 낸 화음이다. 부서배치가 있는 날이다. 대학시절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도 있고 인턴 경험도 있지만, 정직원이 되어서 받는 부서배치란 느낌이 퍽 생경하게 와닿는다. 


"안녕하십니까. 구매부 신입사원 코코아입니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띄고 최대한 밝고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부장님, 차장님, 대리님, 그리고 선배님 두 분을 차례로 뵈며 첫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내 뒷자리인 고등학교 졸업으로 일찍 취직한 20살 선배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 부서에는 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인도인 한 분과 중국인 한 분도 계셨다는 거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나로서 이 회사에 지원할 때 영어면접이 꽤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구매부라는 특성상 해외업체와 일을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영어가 상당히 중요했는데, 영어면접에서 고난을 겪는 면접자들이 많았기에 최종합격을 하고 들어온 신입에 대한 기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영어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왔지만, 부서에 외국인이 있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원어민 선생님이 복도 끝에서 보이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려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던 나에겐 꽤나 큰 도전이다. 두근거리며 내 소개는 무사히 끝마쳤는데 소개를 받는데 좀 문제가 있었다. 인도분과의 대면 때 난관에 봉착했다. 본인의 소개가 꽤 길었다. 그런데 이해를 못 하겠다. 분명 집중을 하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입모양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웃고 있는 얼굴은 점점 더 굳어간다. 하지만 입꼬리를 내릴 수 없다. 부들부들 얼굴근육에 경력이 오는 게 느껴진다. 말이 길어질수록 땀샘에서 땀이 솟구친다.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들었다는 무언의 공감이다. 사실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최대한 알아들은 척 애를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우선 내 영어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고, 두 번째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야 말이 빨리 끝날 것 같았다. 짧지만 길었던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내 사수가 된 대리님에게 첫 받은 임무는 영어번역이었다....... OMG....... 또 영어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눈치를 본다. 구글번역 사이트를 연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받은 숙제를 열심히 구글번역기에 돌려서 살짝 손을 보는 것이다. 번역기에 돌렸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살짝씩 구어체를 섞어 자연스럽게 번역을 해야 한다. 너무 완벽한 것보다는 살짝씩 빈틈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한다. 절대 번역기를 돌렸다는 티를 내서는 안된다. 대리가 된 지금 내 위치에서 보니 그 당시의 내 행동은 정말 우스웠다. 만약 내가 신입사원에게 그런 임무를 주고 결과를 받았다면 당연히 번역기의 힘을 빌렸겠지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번역기가 너무 잘되어 있는 지금, 그런 임무를 주지도 않았을 것 같지만. 그 당시 대리님은 나의 기본 영어실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융통성과 업무처리방식을 더 보고자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영어는 잘 못해도 문장능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는 일종의 꼼수(?)로 첫 테스트를 통과했다.




퇴근 후엔 '신입사원 환영회'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은 회식장소로 향했다. 전 부서의 부, 차장급부터 임원들까지 모두 모이는 자리였기에 바짝 긴장이 됐다. 옷차림에 흐트러짐이 없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점검했다. 처음 보는 수십 명의 얼굴이 있는 자리에서 평소 사람들 얼굴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는 입이 절로 말라갔다. 수많은 이름을 듣고 외워야 했다. 하지만 이름을 외우면 얼굴을 모르겠고 얼굴을 알겠으면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래서 최대한 성명을 제외하고 부르려고 했는데 문제는 직함도 헷갈린다는 거였다. 또 하나, 사내연수 때 타 부서 부장님을 통해서 '압존법'을 꼭 고려해서 존칭을 쓰라는 교육을 받았다. 대학 때까지는 직급이라고 해봐야 교수님, 조교님, 선배가 다였기에 별 다를 어려울 게 없었는데, 사회는 달랐다. 이사님 앞에서 '김 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해서는 안될 노릇이었다.(사실 요즘은 트렌드가 달라졌다. 압존법을 따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님'은 붙여도 된다.) 안 그래도 직함이랑 이름도 모르겠는데 압존법까지 신경을 쓰자니 내 머리 용량이 이걸 다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술은 또 술대로 마셔야 했다. 상사에 따라서 술을 강권하는 분도 계셨는데 그런 분 앞에서 채운 잔을 놓는 행위는 엄격하게 불법처럼 통제되었다. 그렇게 한잔, 두 잔을 받아마시다 보니 술이 약한 편이 아닌 나로서도 살짝 어지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부장님이 참 좋은 분이셨다는 거다. 술을 안 드시는 분이다 보니 술을 강권하지도 않았고, 성품도 온화한 분이라 다른 자리 인사를 돌다 우리 부서 자리로 돌아오면 괜스레 고향으로 온 것 같이 마음이 편해졌다. 만난 지 아직 하루도 안 됐지만 참 웃긴 감정이다. 앗차, 근데 그러고 보니 오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정신과 약을 빼먹었다. 술을 마셨는데, 지금 먹어도 되는 걸까 한참 고민을 하다 약을 다시 고이 접어 가방으로 넣는다. 약 기운 없이도 무사히 하루를 넘긴 내가 오늘은 좀 대견하다.(당부의 말 : 절대로 약을 전문가와 상담없이 함부로 중단해서는 안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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