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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May 14. 2024

신입사원의 연수 생존기

완벽한 나의 연기

2018.01.01(월)~2018.01.05(금)


2018년 1월 1일 자로 회사에 정식 입사를 했다. 1월 1일은 연휴지만 항상 이때부터 신입사원 교육을 시작하는 게 사내 전통이었다. 본사에서 모여서 다 함께 차를 타고 연수를 받으러 경주로 이동했다. 적당히 설레고 기대됐으며 많이 두려웠다.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풀어보려 한다. 대학생활 동안 아르바이트는 종종 했었지만 회사는 처음이다 보니 모든 게 걱정됐다. 회사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생애 처음으로 네일아트를 했다. 그 당시 7만 7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화려한 파츠가 박힌 네일 아트를 골랐다. 아직 학생 신분이던 나로서는 손이 덜덜 떨리는 금액이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냐는 생각으로 큰마음을 먹고 했던 거다. 근데 1월 1일 자로 사내연수를 시작한다는 통보를 받고는 큰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고작 네일아트를 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이걸 떼자니 돈이 너무 아깝고, 안 떼자니 혹시나 품행불량으로 지적을 받을까 너무나 두려웠다. 연수 전날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하루 전날 밤에 떼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이미 밤 9시에 가까운 시간 문을 열고 있는 네일아트샵은 없었고, 결국 그 당시의 남자친구는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다이소에서 네일 용품을 사다가 자신이 직접 떼주겠다는 거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재학시절 당시 네일아트샵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다며 자신 있다고 믿어 보라는 말에 나는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이소에서 용품을 사고 네일아트를 떼는 작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역시 괜히 따로 사람들이 네일아트를 받으러 가는 게 아닌가 보다. 2시간에 걸려 모든 손톱 장식을 떼어내긴 했지만 손톱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갈라지고 까지고 벗겨지고, 손에는 생채기가 났다. 왜 내가 이 친구에게 내 손톱을 맡겼을까 원망도 되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을 텐데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그대로 연수를 갈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착잡했다. 결국 소심하고, 배짱도 없고, 우유부단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거다. 그 뒤로 손톱이 원상 복구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5년 동안 손톱은 시도 때도 없이 부러지고 갈라졌다. 사귀는 동안 나는 그에게 손톱이 계속 부서진다며 어쩔 거냐고 화를 냈다. 왜 자신 있다고 했냐며 따졌다. 참 이기적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거였는데. 그런 일을 겪고 손톱의 상처가 아무는 시간 동안 다행히 나도 성장했다.


상처투성이 손톱과 함께 연수는 시작됐다. 회사에서 다시 조우하게 된 학교 선배 언니(<05화 뜻밖의 기쁜 조우> 참고)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첫째 날은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동기 이름을 외우는 게임도 하고 술자리도 가졌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됐는데 조별 게임을 주로 했다. 협동력을 기르는 게임이 많았다. 평소 보드게임에서 승률이 높았던 나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많은 게임을 우리 팀의 승리로 이끌었다. 처음 나를 얕봤던 동기오빠도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네 말을 따르겠다고 내 실력을 인정했다. 내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나는 크게 웃고 동기들과 대화를 끊이기 않게 이어가고 무슨 게임이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건 모두 가면이었다. 진실된 내 모습이 아닌 억지스러움이었다. 웃음도, 대화도, 너스레도. 모든 게 다. 사실은 두려웠다. 게임에서 내가 실수해서 팀이 질까 봐 두려웠고, 내 말실수에 동기들과 친해지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맞췄다. 타인에게 있어 보이게, 성격 좋아 보이게, 친해지고 싶게 행동했다. MBTI에서 지극히 I 성향인 나는 내 몸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썼다. 쿨한 척, 멋진 척, 착한 척, 완벽한 동기가 되고자 했다. '척'은 밤늦은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크게 목소리 높여 떠드는 걸 잘하지 못하는 데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단전 속 에너지 저장탱크에서 경고음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사실 가장 두려웠던 건 약이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조심히 까서 몰래 먹었다. 그러다 몇 번 들켰는데 비염약이라며 둘러댔다. 그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선입견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 지 8년 차가 된 지금은 우리도 일반인과 하나 다를 것 없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 나에게 그건 결코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비밀을 지켜나갔지만 안타깝게도 잠들 때까지도 마음을 편히 쉴 수 없었다. 2인 1실로 동기 한 명과 방을 같이 써야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밖에서 에너지를 쏟고 오면 밤만큼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했던 나에게 아직 어색한 동기는 너무나 힘든 관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티 내지 않았다. 동기는 참 활발하고 성격이 쾌활한 친구였는데 그를 보자니 내가 너무 소심해 보여 5일 동안 비슷해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5일간의 긴장됐던 연수를 끝내고(내 연기는 완벽했다. 모두들 나를 활발하고 쾌활한 친구로 인지한 듯하다.) 집으로 복귀했다. 다음 주에는 사내 연수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주말 동안 다시 단전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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